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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Mar 13. 2023

포르투갈 포르투,
"감성에 대해"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10 _ Porto, Portugal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포르투갈 포르투,

세 번째 이야기: 감성에 대해.





음악이 가진 힘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다.


도루 강

    포르투 도루 강변에 앉아 천천히 도루 강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에어팟을 통해 모든 소음을 차단하였고,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온전히 풍경에 집중하며 운치를 즐겼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 아름다운 분위기에 감성을 더했고, 그렇게 한번 더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다.


    음악은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상적인 순간이어도 좋은 배경음악을 입히면 그 순간 마치 영화 속 특별한 한 장면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준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인생의 한 장면이지만 음악은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예쁜 추억이 되게끔 도와준다.


도루 강

    음악이 가진 힘은 강하다. 빠른 템포에 베이스와 퍼커션 사운드가 강조되는 비트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게 되고, 힙합적 가사를 얹으면 마치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인양 자존감이 높아져 당당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느린 템포에 잔잔하고 차분한 멜로디를 들으면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있고, 여기에 슬픈 이별 가사를 얹게 되면 세상 우울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우스갯소리로 '음악 버프를 받는다'라고 표현한다.


    적당히 누적된 피로와 따뜻한 햇빛, 선선한 날씨, 골목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식당의 맛있는 음식 향기, 거리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눈앞에 펼쳐진 예쁜 포르투의 모습,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완벽한 한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행복노트 #6

음악은 인생의 한 순간을 더욱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노을질 녘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약 한 시간 그리고 해가 완전히 진 후 약 한 시간, 이때의 해 질 녘 시간대를 나는 개인적으로 "골든아워 (golden hours)"라고 부른다. 아마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 시간을 "황금 시간대", "골든 타임" 등 비슷한 명칭으로 부를 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 이 시간이 되면 부드러운 금색의 햇빛이 온 세상을 덮으며, 하루 중 가장 우아한 분위기 만들어준다. 골든아워에 거리를 나서면 마음속 차분한 감동과 함께 서정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감성에 스며들게 된다.


    의학적으로 "골든아워"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조치가 필요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의미한다. 조금은 엉뚱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일부로 하루 중 이 골든아워를 만들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나 같은 사람들은 이 골든아워 시간대를 통해 우울한 심리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얻는다. 너무 밝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적당한 햇빛을 쬐고 있으면, 누군가 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듯한 정서적 안정감을 느낀다. 또한, 따뜻한 색으로 치장된 주변을 감상할 때, 많은 잡념과 걱정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나와 현재에 집중하게끔 도와준다.


    즉, 나에게 "골든아워"는 햇빛이 세상을 금색으로 뒤덮는 시간, 그리고 내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 이렇게 두 가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노을 하나로 소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큰 축복인 듯하다.


행복노트 #7

해 질 녘 노을을 보고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서적 축복이자 행복이다.
포르투의 노을





감성에 대해



    인간은 "감성"을 가진 동물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탐하고자 하는 심미적 본능을 지니고 있다. 본인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음악이나 미술같이 인간의 여러 감각적 요소를 활용하여 예술로써 승화해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감성"은 사람을 더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어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감성에 매우 섬세한 사람이었다. 이른 나이에서부터 취미로 악기를 다뤄왔던 덕분에 음악의 멜로디나 노래 가사를 통해 묘하고 다양한 감정을 자주 느꼈다. 또한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나이의 나는 광활한 자연을 담은 예쁜 사진이나 감성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격한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런 예민한 감성은 사춘기가 되었을 무렵 극에 달하였다.


    '중2병 사춘기'가 심하게 온 탓에 늘 끊임없이 자아에 대해 고민하고 우울해하며 내면의 세계를 구축해나가고 있었다. 당시 나름 힘들고 복잡했던 심리 속에서 유일하게 정서적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건 '시'를 쓰거나 '작곡'을 하는 것이었다. 실력이 좋건, 나쁘건 나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 생각과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몰입의 순간들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섬세한 감성도 치료될 만큼 결정적인 극약처방이 있었다. 바로 "오글거린다"라는 단어였다. 가끔 내가 지은 시나 가사가 만족스러우면 그 시절 '도토리 웹사이트'를 통해 공유를 하였다. 하지만 그 글을 읽었던 몇몇의 지인들이 "오글거린다"라는 말과 함께 내 감성에 대한 상처를 주었고, 갑자기 내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무시받고 우스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일 이후로 마음이 위축되어 어떠한 형식이로든 내 생각이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당시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성글은 오늘날의 흑역사로 남기 일쑤다. 만약 아직까지 그 글들이 공개적으로 남아있었다면, 그 글들로 인해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들을 통해 나와 달리 감성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 속마음 이야기를 공개적인 곳에 함부로 남발하는 것도 자제하게 되었다. 


    사람의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듯 현재도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감성이 풍부한 듯하다. 그러나 만약 감성 스펙트럼이란 게 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중립적 스탠스를 취하려 노력하는 것 같다. 감성이 섬세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게 되었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감성에 조금씩 무뎌지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오히려 "예전의 내"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깊고 풍부한 감성이 나를 연약하게 만드는 줄 알았으나, 지나고 보니 그 감성 덕분에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공감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감성 또한 어떻게 보면 나만의 좋은 재능이었던 것인데, 타인의 눈치를 보며 문제인양 스스로 깎아낸 것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감성이 섬세한 기질은 그 자체만으로 나를 구성하는 특징이고, 나만의 소중한 색깔인 것인데..






포르투의 밤



    어느덧 해는 사라지고 은은한 가로등 조명만이 포르투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예쁘면 뭘 해도 예쁘다"라는 말처럼 포르투의 모습은 어느 시간대나 너무나도 예뻤다. 특히 해가 완전히 지고 난 뒤, 밤의 어두운 그림자 속 드러난 포르투의 야경은 정말 "황홀"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릴 만큼 아름다웠다.


일몰

    포르투는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노을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각종 블로그와 카페의 여행글들을 참고하다 보면 포르투의 야경은 "손에 꼽을 만큼 예뻤다"는 후기가 많았다. 실제로 나조차도 포르투의 밤 분위기와 야경을 보며 '이 순간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좋았다. 도루 강과 포르투의 전경을 한 없이 바라보며, 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마음속에 모두 담으려 노력했다.


    어느 도시를 여행하더라도 야경만큼은 필수적으로 감상하려 노력한다. 낮의 모습밤의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포르투는 낮보다는 밤의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한국의 도심처럼 네온사인이 빛나는 화려한 야경보다 포르투의 잔잔한 분위기의 야경을 더 선호한다. 치안적인 면에서는 아무래도 밤이 밝은 한국이 더 안전할 수 있지만, 거리의 정신없는 간판들과 밤문화의 시끄러운 소음들이 가끔 나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포르투의 잔잔한 밤풍경은 고요함과 평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다행히 포르투는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었고, 밤에 혼자 부담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늦오후부터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유럽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내가 유럽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꿈속인 것 마냥 눈을 감았다 뜨면 원래 살던 일상 속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어쩌면 포르투 도시 모습 또한 너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밤이 깊었지만 포르투의 번화가는 아직까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시원한 맥주와 함께 포르투의 야경을 감상하며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내일의 일정이 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행복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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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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