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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Mar 09. 2023

포르투갈 포르투,
"높은 장소의 가치"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9 _ Porto, Portugal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포르투갈 포르투,

두 번째 이야기: 높은 장소의 가치.





높은 장소의 가치



    포르투의 오후는 몹시 뜨거웠다. 오전의 쌀쌀했던 날씨와는 반대로 오후의 태양은 따가운 햇빛을 마구 내뿜고 있었다. 일교차가 심해 몸도 어떤 계절에 맞춰 적응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더위를 피해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로 '대구 생선요리(Bacalhau)'와 '문어밥(Arroz de Polvo)'을 먹고, 배가 한결 든든해진 상태로 포르투의 뷰포인트 명소 중 하나인 '비토리아 전망대 (Miradouro da Vitória)'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나섰다.



    포르투에는 강을 중심으로 언덕 위에 도시가 세워져 그런지 도시 곳곳에 야외전망대가 많이 있다. 각 전망대는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으며, 다채로운 포르투 도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포르투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특히 강 주위에 오손도손 모여있는 오렌지색 지붕의 건물들이 도시의 미관과 정체성에 멋과 특색을 더한다. 강렬한 오후의 햇빛 아래 더위로 고통받고 있었지만, 종종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나무 아래 짙은 그늘이 포르투의 예쁜 풍경을 더욱 감상하게끔 허락해 주었다.


    높은 장소는 예로부터 권력을 상징했다. 지배하는 지역과 군중들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다스리는 것을 가능하게 한 기능적인 장소였다. 반대로 지상의 모두가 높은 곳을 우리다 보며 한곳에 집중하게끔 만들기도 수월하였다. 높은 건축물을 짓기 위한 고도의 기술과 자원, 자본이 요구되는 점도 미루어보아 당대 지도자의 권력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고대 바벨탑 일화부터 중세시대 고딕양식의 건축 디자인 등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을수록 신과 관련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 역사적인 사례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로 높은 장소와 관련된 사회적 많은 현상들이 있다. 뉴욕에선 센트럴파크를 볼 수 있는 펜트하우스, 서울에선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등 높은 곳에 대한 수요는 끊이질 않는다. 도시의 높은 마천루는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로써 존재 자체만으로 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의 높은 장소에 대한 열망은 본능인 듯 시공간을 넘어 역사 속 지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 많은 관광객들이 여행하며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장소는 아마 "전망대"일 것이다. 각 도시별로 지역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명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명소들은 타지의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현지에 살고 있는 지역민까지도 자주 방문하게끔 유혹한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은 곳에서 도시 경관을 바라보고 있으면, 끝없이 펼쳐진 풍경에 넋을 놓고 감상하게 된다. 권력의 의미를 넘어 "높다"는 그 자체만으로 높은 장소에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나도 항상 여행지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전망대부터 찾아보는 편이다. 건물이나 언덕을 피해 높은 곳에 올라 시야가 확 트인 장소에 서있으면 마음이 뻥 뚫린 듯한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건물틈 사이로 지나가는 아기자기한 자동차와 미니어처 같은 사람들을 구경하며 장난감 세상처럼 재밌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도시를 내려다보며 마치 내가 이 전부를 가진 것 같은 발칙한 착각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전망대에서 도시 곳곳을 계속 응시하다 보면, 걸어 다니면서 보지 못한 숨겨진 새로운 장소들을 발견하는 행운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에서 일까 귀여운 고양이들도 높은 곳을 좋아하며, 우습게도 항상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비토리아 전망대 (Miradouro da Vitória)





포트와인



    포르투의 도루 강(Douro River)을 들여다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배들이 강변을 따라 정박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오크통에 담긴 "포트와인(Porto Wine)"을 강을 통해 이베리아 반도 곳곳으로 전달하기 위한 운송수단이었다. 온화한 날씨 덕분에 포르투 인근지역은 양질의 포도 경작이 가능했고, 이곳만의 특별한 양조법을 통해 도수가 높고 과일향이 풍부한 와인을 생산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지자 포르투 중심으로 와인을 수출하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포트와인"은 포르투의 대표 특산물이 되었다.


    포르투 강변으로 가면 포트와인 와이너리 회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각 회사마다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대표 포트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종종 집에서 혼자 와인을 즐겨 마시던 나에겐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렇게 나는 칼렘(Calem) 회사의 와인투어를 신청하였다.


    투어를 즐기며 포트와인의 역사와 양조방식, 관련된 상식들을 배우며 와인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졌다. 또한 실제로 숙성 과정 중인 와인과 그 환경을 직접 볼 수 있어 아주 유익한 경험이었다. 특히 포트와인을 처음 시음하였을 때, 입안에 퍼지는 특유의 달달한 풍미는 지속적인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겠지만, 한국에 돌아가서도 정기적으로 구입해 마시고 싶을 만큼 좋았다. 포트와인도 그 가짓수가 다양하게 많이 있었는데 모두 시음해 볼 수 없음에 아쉬웠다.


    와이너리 투어 중 같이 여행객들끼리 앉아 포트와인을 시음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친절하고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술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덕분에 모두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앉았던 테이블에는 호주에서 온 중년의 부부와 젊은 영국인 친구 2명이 합석했다. 우리는 앉아서 여행 정보를 주고받았고, 여행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중년의 부부는 내가 혼자 3개월 이상 여행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이번 여행이 내 인생에 있어서 아주 좋은 경험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여행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가지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술과 함께 뜻밖의 누군가와 앉아 삶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행복노트 #5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재즈 음악, 달달한 와인은 낭만 가득한 순간을 만들어 준다.
칼렘 와이너리





도루 강변



    행복한 와이너리 투어가 끝나고 다시 도루 강변으로 돌아왔다. 와이너리에서 신나게 시음했던 탓인지 취기가 올라와 기분이 조금 들뜬상태였다. 시간은 벌써 늦오후가 되어 해가 뉘엿뉘엿 대서양 바닷속으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고, 강변의 거리는 곧 노을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오후 밝은 햇빛 아래의 포르투가 생기 있고 활발한 느낌이었다면, 늦오후 해가 저물어가는 포르투는 점점 차분한 느낌으로 변모해 갔다.


    강변에는 쉬어갈 수 있게끔 설치된 벤치들이 강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어수선한 인파 속에서 전망이 좋은 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벤치에 혼자 앉아 있다 보니 가끔 행인들로부터 가벼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여행 규제가 풀린 지 얼마 안 된 터라 여행객 수가 적기도 했으며, 20대 동양인 남자 혼자 여행하는 것이 생소하고 신기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나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여느 젊은 커플들처럼 두 손을 꼭 잡고 데이트하는 백발의 노년 커플들, 무리를 이루어 왁자지껄 즐겁게 여행하는 젊은 친구들, 나처럼 혼자 여행하며 조용히 풍경에 몰입해 있는 여행객들 등 거리 속에는 다양한 세상공존하고 있었다. 나도 포르투 도시 속 공간 한 부분에 존재하며 나만의 세상을 하나 이루고 있음이 즐거웠다.


    그렇게 이곳에 앉아 아름다운 포르투의 "노을"을 기다리기로 했다.


포르투,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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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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