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원빈과 나의 공통점

by 최예또

그맘때쯤 나는 주말마다 대학생 연극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분명 졸업생의 신분이기에 대학생 동아리에 들어가기엔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렇다고 직장인 동호회에 들어가자니 변변한 직장이 없는 터였다. 게다가 빠질 수 없는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이유는 대학생 동아리의 회비가 직장인 동호회의 회비보다 훨씬 저렴했다는 거였다.


내가 활동했던 연극 동아리는 나름의 역사와 체계를 가지고 오랜 시간 운영되고 있던 곳이었다. 우리는 매주 한 번씩 모여 다 같이 연습하고 발표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들을 갈고닦는 시간들을 가졌었는데, 그렇게 연습을 반복하다 보니 깨닫게 되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내가 아마추어 사이에서는 연기를 꽤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의 소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작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나는 꽤나 고무되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새로 올라온 오디션 소식이 없는지 인터넷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날따라 어쩐 일인지 갑자기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프로 무대 오디션을 맨날 구경만 하지 말고 직접 지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는 오디션 공고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곳엔 취업준비를 하면서 많이 봐왔던 '상경계열 전공자 우대', '공대 졸업생 우대'와 같이 ‘연기 전공자 우대’ 같은 조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릿속 전구가 '탁!'하고 켜지는 느낌이었다. 연극영화과를 전공하지 않았어도, 경험이 없어도, 프로가 아니라도 오디션 지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였다.


서류전형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배우 구인 공고라는 특성상 모든 지원 서류에서 프로필 사진이 요구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첫 번째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보정 어플을 사용한 셀카는 인정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스튜디오에서 찍은 그럴싸한 프로필 사진이 없었다.


배우들에게 있어 프로필 사진이란 일반인들에게 있어 증명사진보다 훨씬 그 중요도가 높다. 생김새, 눈빛, 입체감, 표정까지 사진을 통해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전문 스튜디오에서 전문 메이크업을 받고 사진을 찍는데, 그 가격이 보통 30만 원에서 50만 원 선이었다. 감당할 수는 있는 금액이었지만 어찌 보면 무모하게 끝나버릴 수도 있는 도전을 위해 투자하기엔 조금 망설여지는 금액이었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전문가가 아닌 스스로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전문 스튜디오처럼 비싼 조명도, 카메라도, 메이크업 실력도 없었다. 다만 나에겐 근본 없는 패기와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핸드폰 갤럭시 S10이 있었다. 우리 집 벽도 입주 전에 직접 하얀색으로 칠을 해놨으니 배경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한쪽 벽면에 바닥까지 덮도록 전지를 이어 붙어 배경을 만들고 책상에 있던 스탠드 조명과 스탠드 거울을 가져와 그 앞에 설치했다. 그다음 삼각대를 이용해 핸드폰을 고정한 후 타이머를 맞춰놓고 다양한 포즈를 해가며 직접 사진을 찍었다.


보는 사람, 시키는 사람, 혼내는 사람 아무도 없이 나 혼자서 하는 촬영은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아주 수월하고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나는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하고 여러 가지 스타일로 옷을 바꿔 입기도 하고 머리를 묶고 풀었다 하며 여러 가지 콘셉트로 촬영을 진행했다. 때로는 청초하게, 때로는 뇌쇄적이게, 때로는 지적이게, 또 때로는 귀엽게. 그렇게 나는 카메라 앞에서 마음껏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언젠가 배우 원빈이 인터뷰한 내용을 읽게 된 적이 있었다. 강원도 정선 산골동네에서 배우라는 목표 하나만으로 무작정 상경한 그 역시도 전문 프로필 사진이 아닌 집 담벼락 앞에서 친누나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오디션에 제출해서 합격을 했다고 한다. '언젠가 나도 그처럼 내 첫 프로필 사진에 대한 경험을 인터뷰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감히 그런 꿈을 꾸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