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발연기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by 최예또

사진도 찍었으니 이제 서류를 지원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된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잘 나온 컷 몇 장을 골라서 핸드폰 보정 어플을 이용해 피부와 얼굴 윤곽을 살짝 다듬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밝기 조절을 한 다음에 테두리에 살짝 음영을 주어 아마추어 사진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다. 다른 사람 수준으로 보정을 심하게 할 경우 현장 오디션장에서 오히려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최대한 실물과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는 건 기본 상식이었다.


그런데 서류를 작성하다 보니 새로운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공연 경력. 나는 한 번도 연기로 무대를 서 본 일이 없으니 당연히 그 란을 공백으로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쓸 수 있는 경력이 없다고 공백상태로 제출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허용이 되지 않았다. 쓸 수 있는 경력이 없다면 내 열정이라도 표현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심정으로 나는 공연 경력란에 이렇게 글을 적었다.


제가 가진 모든 열정과 재능을 이 지면에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단 1분만이라도
연기를 직접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상업연극은 처음이지만 제가 적임자라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지원 가능한 모든 오디션에 빠짐없이 모두 지원을 넣었다. 잘 팔리는 메이저급 공연이든 처음 들어본 초연극이든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떻게 그런 무모한 판단을 했을까 싶은데, 이때의 나는 '딱 오디션 열 번만 보자. 그랬는데도 다 떨어지면 나에게 재능이 없는 거라 판단하고 깔끔하게 배우의 길은 포기하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런 간절함이 닿았는지 지원을 넣은 곳들 중 절반 이상에서 서류 통과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막연하기만 했던 오디션의 기회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서류가 통과되었으니 오디션을 볼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다시 한번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연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 연극배우를 꿈꾸고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라 무작정 인터넷을 켜고 검색창에 '연극배우 되는 법'을 검색하여 오디션 정보가 올라오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똑같이 검색창에 '여자 밝은 자유연기'를 검색했다. 다행히 연기 학원에서 올려놓은 몇몇 개의 대본들을 구할 수가 있었다.


그다음은 그냥 냅다 외우는 거였다. 일단은 소리 내어 읽으면서 최대한 대사를 암기했다. 하지만 오디션은 낭독극처럼 앉아서 외운 걸 말하는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외운 대사를 일어서서 움직이며 뱉는 연습을 해봤다. 앞에 누군가 앉아 내가 하는 연기를 보고 있다고 상상하니 몸이 마치 로봇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발걸음 한 번, 손짓 한 번도 어색하게 느껴져 순서를 외우고 움직여야 할 정도였다.


방구석에서 혼자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보길 반복하는 며칠의 연습 끝에 결국 나는 실전에 맡기기로 했다. 혼자 연기하고 혼자 디렉팅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그쯤 되자 '에라이, 될 대로 돼라'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나는 여태껏 연습 때보다 무대 위에서 더 떨지 않고 잘해왔던 나의 무대체질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첫 오디션 날이 다가왔다.


11월 중순이었지만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다. 나는 지원하는 배역에 조금 더 어울릴까 싶어 치마를 입고 갔는데 정말이지 발과 다리가 꽁꽁 얼어 그대로 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첫 오디션이다 보니 일부러 일찍이 오디션장 근처 카페에서 대기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지만 날씨 탓인지 마음 탓인지 진정은 쉽사리 되지 않았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오디션장에 도착하고 보니 그곳은 다름 아닌 오픈런으로 공연이 진행 중인 극장이었다. 연습실이나 사무실에서 오디션을 보는 줄 알고 있었던 나는 실제 극장 무대에서 오디션을 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긴장되는 마음을 더욱 주체할 수가 없게 되었다. 문 밖에서 진행요원에게 이름을 말하고 5분쯤 기다렸을까, 이윽고 극장 안에 있던 지원자가 나오고 내 순서가 되었다. 나는 문을 열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