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쯤의 나는 매일같이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만나 속상한 마음을 술로 달래는 게 일상이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새벽까지 마시는 일이 잦아졌고 생활 패턴이 어그러지자 끼니와 수면도 불규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간들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점점 살이 붙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모습이 변한 걸 크게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느 날 극장에서 배우들과 다 같이 모여있던 때에 연출님이 별안간 내게 이런 언행을 했다.
너 살 너무 많이 쪄서 아줌마 같아.
남자친구 생겼다더니 혹시... 그거(임신) 검사해 봐야 되는 거 아니냐?
그의 그 발언이 애써 유지 중이던 살얼음판 같은 내 마음에 돌을 던졌다. 그때 당시엔 작은 조약돌인 것 같아 장난처럼 웃고 넘겼는데, 집에 오는 길에 다시 생각해 보니 꽤나 묵직한 돌덩이였던 거였다. 큰 돌덩이가 던져진 곳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내 마음에 번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틈으로 왈칵 쏟아져 나온 물은 미처 막을 새도 없이 내 마음을 모두 잠겨버리게 만들었다. 일련의 사건들로 정신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자 나는 실낱같이 붙잡고 있던 배우에 대한 미련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느낀 그 감정의 모양은 환멸과 가장 비슷했다.
언제까지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헛된 희망으로 시간을 축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우에 남은 미련을 어렵게 떨쳐낸 나는 정신을 차리고 적극적으로 먹고살 일을 찾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중국어 과외일을 하면서 나에게 맞는 아르바이트를 천천히 물색하기로 했다. 나는 집 근처 대학병원에 나온 안내데스크 업무와 영어, 중국어, 한국어 3개 국어에 능통해야 하는 도슨트 업무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중 도슨트 업무는 미리 제공된 영어, 중국어, 한국어 스크립트를 암기한 후 면접을 봐야 했기 때문에 나는 지방 공연 일정 중에도 대본이 아닌 스크립트를 손에 달고 있어야 했다. 동료들과 합숙을 해야 하는 지방 공연 일정 내내 나는 공연 후 뒤풀이도 가지 못하고 스크립트를 암기하려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미리 극장에 가서 연습을 헤야 했다.
두 업무 모두 면접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는데 인포데스크 일은 탈락, 도슨트 일은 1시간여의 2:1 면접 끝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는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송이 씨는 영어가 조금 아쉬운데 중국어 발음이 워낙 좋고 전체적으로 웃는 얼굴에 인상이 너무 좋아서 같이 일하면서 가르쳐보고 싶대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유야 어찌 됐건 부족한 영어실력으로나마 3개 국어를 필요로 하는 일에 내가 채용이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근무지 또한 강서에 위치한 대기업 단지 내에 있어서 비록 아웃소싱 업체 소속이지만 대기업 마크가 박힌 사원증도 받을 수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버지께서는 내가 대기업에 취직한 것 마냥 좋아하셨다.
그런데 합격 통보를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는데도 그쪽에서 출근 날짜를 말해주질 않는 거였다. 기다리다 지쳐 연락해 물어보니 최근에 갑자기 또 코로나가 확산되어 외국인 고객들이 줄어들었다며 입사가 잠정 연기되었다는 게 아닌가. 내가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옅어져 갔다. '이럴 거면 애초에 합격했다는 말을 하질 말지...'. 나 혼자만 실망하면 또 모를까 괜히 주변에 거짓말을 한 사람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서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었다. 기대감이 실망감이 되고, 실망이 오기로까지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제 와서 다시 나를 부른대도 나는 거기에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한 잔 하기로 한 친구가 살이 쪽 빠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여전히 살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나는 그 친구가 갑자기 살이 빠진 이유를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친구 왈, 헬스장 인포데스크 알바를 하는데 일을 하다가 트레이너들이랑 친해져서 운동이랑 식단을 코칭받다 보니 자연스레 살이 빠졌다는 게 아닌가. 나는 번쩍 눈이 뜨이며 '이거다!' 싶었다. 집에 돌아와 바로 인터넷에서 헬스장 알바를 검색했다. 오전에서부터 새벽까지 다양한 조건의 알바들 중에서 눈에 띄는 공고가 있었다.
[견습 트레이너 모집합니다]
'트레이너도 견습생이 있나?' 싶은 맘에 공고를 눌러 상세정보를 읽어보았다. 거기엔 근무 시간, 급여 및 업무 내용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체대 출신 아니어도 됩니다. 운동 못해도 됩니다.
인성과 열정만 보겠습니다. 부담 없이 연락 주세요.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던 견습생 모집 공고의 마지막 문장이 결국 나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자꾸만 '너도 할 수 있다잖아. 일단 한 번 지원해 봐.'라고 누가 옆에서 꼬드기는 것만 같았다. 내 주변엔 트레이너에 대해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어서 나는 무작정 인터넷을 검색하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트레이너들이 말하는 직업적 특성과 장단점에 대해 꼼꼼히 찾아보며 3일 밤낮을 고민한 후에 비로소 나는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결심이 서자마자 나는 바로 규모가 큰 헬스장으로 서너 군데를 추려 견습 트레이너 지원을 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