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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Mar 09. 2022

19. 명문대 유학생, 지금은 전단지 돌립니다.

 면접은 헬스장 상담 데스크 한 편에서 이사님과 1:1로 진행되었다. 이사님은 나의 이력서에 운동 관련 경험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짧은 알바 경력뿐인 것을 보고 갸우뚱하시더니 내가 트레이너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나는 논리 정연하게 내가 3일간 고민했던 생각들과 그 결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째, 서비스직 경험이 많아 사람을 응대하는 것에 자신이 있고 둘째, 영업적인 부분이 경쟁구조에서 두각을 보이는 내 성격에 잘 맞을 것 같으며 셋째,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편이고 넷째, 운동을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한 경험이 오히려 일반인들에게는 도움 되는 조언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짧은 알바 경력은 유학생 신분이었던 탓에 방학기간밖에 일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보충설명까지 곁들이자 이사님은 나의 똑부러짐에 고개를 끄덕이시는 거였다. 하지만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일이 정말 힘들 텐데 끈기 있게 잘할 수 있겠냐며 재차 내게 물었다. 나에겐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이런저런 질문과 답변이 이어진 후에 나는 바로 다음 날 출근이 확정되었다. 다음 날이 7월 1일인 탓이었다.


 첫 출근 전 날은 긴장이 되어 잠이 오질 않았다. 헬스장은 운동하는 친구 따라 몇 번 가서 러닝머신이나 좀 타고 아령이나 몇 번 들어본 게 전부였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해서 출근했더니 너무 일찍 온 탓에 뭘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출근시간이 될 때까지 그저 헬스장 입구에서 멀뚱멀뚱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내게 말을 걸어준 트레이너 선생님에게 오늘부터 출근하게 된 견습생이라고 말하니 그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거였다. 그곳에서 다른 트레이너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와 가장 자주 보게 될 사이라면서 같은 견습생 신분인 S군을 소개받았다. 나보다 한 살이 어렸던 그는 나보다 한 달 일찍 이곳에 왔다고 했다.


출근 첫날 S군이 사준 단백질 바


 하루 일과는 면접 때 이미 설명 들었던 대로 단순했다. 출근하면 우선 회원복과 수건들을 체크하고 비어있는 곳은 직접 채워놓아야 했다. 우습게 보였던 옷 뭉치와 수건 뭉치들은 직접 들어보니 결코 우스운 무게가 아니었다. 나는 창고에서부터 그것들을 낑낑대며 들고 와서 하나씩 빈칸에 채워 넣었다. 회원복 체크가 끝나면 다음 순서는 탈의실 정리였다. 나는 밀대로 바닥에 널브러진 머리카락과 수건들을 정리하고 젖은 옷과 수건이 담긴 포대를 새 포대로 교체하는 일을 했다. 땀과 물을 먹은 옷과 수건들은 마른 것들보다 더더욱 무거워서 나는 또 하는 수 없이 낑낑대며 무거운 포대를 바닥에 질질 끌고 가야 했다. 낑낑대고 있을 때 가끔 운이 좋으면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와서 도와주시기도 했다.


 그다음 업무는 전단지 돌리기였다. 사실상 업무시간의 9할을 차지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전단지를 돌리는 데에 할애해야 했다. 나와 S군은 오전에는 역 근처에서 길거리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오후에는 센터 근처 주거단지를 다섯 군데로 나누어 하루에 한 군데씩 전단지를 부착하는 일을 했다.  


 전단지를 돌리는 일은 처음엔 창피한 것이 가장 힘들었으나 다행히도 그건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더럽게도 안 간다는 거였다. 전단지 한 뭉치를 들고 센터를 나갈 때면 이걸 또 언제 다 끝내나 싶어서 자연스레 한숨이 나왔다. 전단지를 받지 않고 무시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다짜고짜 비방을 한다거나 인상을 쓰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지금 6년 동안 그 고생을 하며 중국에서 어렵게 대학교를 졸업하고선 여기 와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자꾸만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해서 고작 여기서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달래며 계속 이 사실을 곱씹었다.


내가 어떤 대학교를 졸업을 했든, 어떤 과를 전공을 했든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아. 오히려 이 분야에서는 너는 아무것도 없는 초짜야.
다른 분야의 스펙으로 여기서 인정받을 생각 하지 마.
너 지금 완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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