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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Mar 12. 2022

21. 맥주 두 캔이 위로해 주는 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 사건 이후로 이 일에 대한 열의가 떨어지는 건 내 의지로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트레이너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나는 그곳에선 그런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주 5일 40시간 근무 중에 단 세 시간에 불과한 트레이너 교육은 내가 기여하는 것에 비해 충분하지 않게 느껴졌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있는 교육을 세 번쯤 받고 나자 나는 아직 실기교육도 못 들어간 이 정도 속도라면 1년 동안 이 짓을 계속해도 번듯한 트레이너가 되기엔 어림도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우선 이런 이야기를 S군과 공유했다. 그도 나와 같은 입장이니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S군은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며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래도 이곳에서 버틸 거지만 혹시 그게 아니라서 옮길 거라면 이왕이면 빨리 옮기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을 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이 센터에서 이 일을 하며 그처럼 오래 버틸 자신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일이 힘든 것보다 큰 발전 없이 제자리걸음인 내 상태를 보는 일이 더 힘들었기에 나는 그날 밤부터 바로 다른 센터의 견습생 공고를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나는 규모와 위치를 고려해 괜찮은 조건을 제시한 센터 세 군데에 다시 지원을 넣었다. 다음 날 나는 지원했던 곳들 중 한 곳에서 연락을 받을 수 있었고, 그다음 날 출근 전으로 면접시간을 잡았다. 면접날 처음 방문한 그곳은 한눈에 봐도 규모가 꽤 컸다. 헬스장 안에 필라테스와 스크린 골프를 같이 운영하고 있었고 샤워실엔 무려 온탕과 냉탕이 따로 있었다. 이전 센터 선생님들은 다 어리고 앳된 외모에 마름탄탄형 체형이었는데 이곳 선생님들은 연배도 있을뿐더러 다들 하나같이 차렷자세조차 안 될 것 같은 보디빌더 선수들이었다. 나는 덩치가 산만한 사람들 중에서 누가 PT매니저님인지 찾을 수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뻘쭘하게 서있었는데 곧 누군가 와서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그 사람을 따라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책상 맞은편에 앉은 그는 자신을 PT매니저라고 소개했다. 잘은 모르지만 느낌상 PT팀장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인 것 같았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위협적인 몸과는 달리 깔끔한 인상에 꽤나 정중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면접은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흘러갔지만 그는 끝까지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와서 운동은 배워본 적도 없는 친구가 트레이너를 하겠다고 하는 게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는 내 굳은 의지와 태도를 보면서 사실 배경이야 어떻든 전혀 상관없지만 이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직업체험의 기회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면접이 끝나고 출근을 한 다음 한창 또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같이 일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으니 출근 가능한 날을 말해달라는 연락이었다. 면접이 붙어 기쁜 것도 잠시, 지금 근무 중인 이곳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일을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약 2주 정도의 유보기간을 요청드리고 나는 남아야 할지 떠나는 게 좋을지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래도 역시 센터를 옮기는 게 맞는 것 같다는 판단이 서자 나는 결국 이사님께 사직 의사를 말씀드렸다.


 이사님께는 다른 센터 견습생으로 옮기는 거라고 말하기가 차마 죄송스러워서 나는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고 적절히 둘러댔다. 그때만 해도 여자 트레이너가 귀했던 탓에 이사님은 나를 놓치는 게 꽤나 아쉬운 모양이었는지 이틀정도 계속 나를 불러내서 이곳에 남을 수 있도록 설득했지만 내 결심은 끝내 변하지 않았다. 


 근무 마지막 날, 모든 선생님들께 간단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얼마 없는 나의 짐을 챙겨 집으로 가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마트에 들러 캔맥주를 집어 들었다. 집에 와 맥주를 홀짝이며 내가 한 일을 다시 찬찬히 되돌아봤다. 고작 견습생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직은 이직이니까. 일단은 이직에 성공한 나에게 축배를 들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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