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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Apr 14. 2022

22. 헬린이 수난시대

 새로 근무하게 된 센터는 하루 근무시간이 총 2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 파트타임도 2시간만 쓰는 곳은 없지 않나?' 싶으면서도 워낙 정신없이 지냈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주어진 자유시간이 퍽 반가운 것도 사실이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본인들과 잘 맞는 사람인지를 보기 위해 일정기간 텀을 두고 관찰하는 시간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아무튼 나는 한동안 출근을 하면 1시간은 전단지를 돌리고 1시간은 교육을 받는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주말에는 본사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기능해부학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토, 일 주말 이틀을 오전부터 오후까지 6시간씩 총 한 달을 꼬박 들어야 했다. 처음 접해보는 수많은 근육들과 뼈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조차 어려운데 같이 듣는 수강생들은 체육전공 출신의 비율이 높은 탓인지 나보다 훨씬 수월하게 강의를 이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뒤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밤마다 잠도 포기해 가며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보이지 않는 필사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것과는 별도로 출근 후에 행해지는 실기교육의 강도도 나날이 높아졌다. 사실 말이 교육이지 보디빌딩식의 트레이닝은 나에겐 마치 극기훈련과도 같은 수준이었다. 내 면접을 담당하셨던 PT매니저님이 실기교육을 직접 맡아하셨는데, 내 다리가 갓 태어난 사슴새끼처럼 후들후들 떨리는데도 절대 멈춰도 된다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일어나라고, 들 수 있다고, 나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고 내게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나는 정말로 강해지고 싶었고 그렇기에 옆에서 다른 트레이너들이 내 모습을 보고 비웃어도 내 위에 얹힌 이 무게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 내어 못 들 것 같았던 무게를 들고 나면 그 뒤엔 말로 형용 못할 짜릿한 성취감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운동을 배우다 보니 무리한 다이어트보다 힘을 키우는 게 급선무라는 걸 느끼게 된 나는 밥 양을 늘리기 시작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밥만 든든하게 먹어도 그다음 운동시간이 훨씬 버틸만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운동도 하고 밥까지 잘 먹고 다니니 자연스레 몸무게가 늘면서 체격이 커지는 이른바 벌크업이 되었고, 나는 대중적으로 선호하는 여리여리한 여성 몸매와는 멀어졌어도 트레이너에 걸맞은 몸이 되어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머지않아 나는 무사히 인턴을 거쳐 번듯한 정직원이 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하루 최소 9시간씩 근무를 하는 일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두 시간만 근무했을 때는 약간 과장을 보태 놀러 가는 심정으로 출근을 했었는데, 다시 9시간 출근의 굴레에 빠지니 처음엔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 힘이 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사람이 별로 없는 오후 시간대에는 개인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곳에서는 트레이너 선생님들끼리 서로 보조해 주며 같이 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선생님들께 운동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왜 일이 잘 풀리기만 하는 걸 지켜보는 법이 없는 건지. 그곳의 근무환경에 익숙해졌을 무렵 점점 심해지던 코로나의 기세를 꺾지 못한 정부가 강력한 거리두기 정책을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결국은 수도권 내 실내체육시설에게 영업 금지령을 내리게 되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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