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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Apr 14. 2022

24. 굴러온 돌이 걸친 돌 빼낸다.

 기대감 가득했던 휴관 후 첫 출근은 다시 쫓겨나듯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일찍 막을 내렸다. 혹시나 싶어 당일 행했던 pcr검사에서는 다음 날 아침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워낙 코로나에 대한 공포감이 심했던 탓도 있고 잠복기가 얼마나 될지 예측할 수 없었기에 여전히 마음을 편히 먹을 수가 없었다. 혹여나 내가 나중에라도 증상이 생겨 양성 판정을 받게 된다면 하루에도 수많은 회원들이 방문하는 센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였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동료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전전긍긍하던 나는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 불편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연세가 있으신 아버지께서도 덩달아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내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괜한 일을 벌였나', '생각이 너무 짧았나'와 같은 자책과 후회로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홀로 버텨내야 했다. 괜히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평소와 다른 것 같으면 꼭 내 걱정이 현실이 되는 악몽을 꾸곤 했다.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말이 이런 때를 위해 생긴 말인 걸까. 평범했던 자가격리 전의 일상이 너무나 그리워지던 시간이었다.


 다행히 추가 확진 없이 격리기간을 끝내고 나는 다시 직장에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지만 출근하자마자 나는 예전과 사뭇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기존에 있던 여자 트레이너들의 갑작스러운 퇴사 때문에 센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신입 여자 트레이너였는데, 자가격리를 하느라 센터에 나오지 못하게 된 사이 새로 입사한 동료가 내 자리를 대체한 것 같았다. 그녀는 탁구 코치 출신이라 운동을 오랫동안 해왔고 바디빌딩 관련 자격증까지 미리 구비를 해두었던 탓에 배경에서는 나와 경쟁이 되지 않았다. 이번 경쟁은 씁쓸하지만 내가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는 본사에서 하는 견습생 교육 프로그램에까지 참여를 해야 해서 한 달간 매일 1시부터 9시까지 원래 일하던 센터가 아닌 다른 센터로 출근을 해야 했다. 센터에서 내가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지분과 영향력을 지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나의 명분이 떨어질수록 그 동료는 더더욱 앞으로 치고 나가기에 바빴다. 매니저님이 푸시해 주는 만큼 그녀 또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니 점점 더 나는 변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억울했지만 사회란 이렇게 냉정한 곳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다고 물러서서 지켜보기만 할 인물은 아니었다. 나는 이 악물고 노력해서 그녀보다 더 뛰어난 내 능력을 보여줘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이곳에서 내 능력이란 곧 '얼마나 많은 회원에게 얼마나 많은 PT결제를 받았는가'를 따지는 매출액이었기 때문에 나는 남들보다 한 명이라도 더 기회를 만드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통했던 것일까. 나는 그 달 내 목표 매출보다 훨씬 많은 매출을 달성할 수 있었고, 이는 정식 트레이너로서 근무한 첫 달 성과치고는 꽤나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주변 동료들에게도 많은 축하를 받았다. 계속 이렇게만 한다면 잃었던 내 자리를 곧 다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말출근을 했던 어느 날이었다. 주말출근은 순번에 맞춰 당직근무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날에 근무하는 트레이너는 나 혼자였다. 사무실에서 데스크 업무를 보기 위해 새로 업데이트된 회원 명단을 확인하는데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게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고, 또 능력을 증명해 보였는데도 새로운 회원들은 여전히 내가 경쟁상대로 여기던 그 동료의 담당으로 되어있었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왜 나에겐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거지?'라는 의문은 금세 '나만 차별하는구나.'라는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감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바로 PT매니저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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