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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Apr 14. 2022

25. 내 별명이 불도저가 된 이유

 나는 그때 이미 눈에 뵈는  없었다. 주말 오전, 전화를 받자마자 따지듯이 말을 하는 나의 태도에 당황한 PT매니저는 이윽고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지금 말하는 태도가 이게 맞아?”라고 호통을 치는데도 나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대고 손은 벌벌 떨리는데도 목소리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강력하게  뜻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건 불공평한 거고, 나는 인정할  없으니 해명이 필요하다고.


 얼렁뚱땅 핑계를 대며 넘어가려던 그는 내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이상 말로는 해결이 힘들다고 판단이 되었는지 “어디 네 마음대로 한번 해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서러운 마음에 한참을 혼자 울었다.


 거울을 보니 아직 눈이 빨간데 언제까지나 계속 사무실에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아까 전에 센터에 도착한 회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잠깐 미룬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화장실로 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선 거울을 보며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넌 프로고 할 수 있어. 지금 가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수업하면 돼.


거울세뇌가 효과가 있었는지 화장실을 나서자마자 나는바로 다른 사람이 되어 평소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회원님과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연기가 느는 일인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의 수업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에 돌아와 동료에게 전화로 방금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속상한 마음을 위로받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예상치 못한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PT매니저였다. 약속이 있는 건지 평소에 보는 모습과는 다르게 멀끔하게 빼입은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전화로 신명 나게 PT매니저 욕을 하던 나는 갑자기 당사자와 마주해 버리니 당황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내가 전화를 급히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슬쩍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무실 소파 한편에 앉은 그는 자기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리며 이쪽으로 와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단박에 그 제의를 거절하며 멀찍이 떨어져 그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마주 보고 앉았다. 그는 "지금 지인 결혼식장에 있다가 너 때문에 밥도 못 먹고 나왔다"며 "내가 너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나도 모르게 미안해져서 나는 눈빛에 서린 경계를 조금 누그러뜨린 채 그를 다시 바라봤다.


 그는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빙빙 돌려 나오는 말의 핵심을 파악해 보면 내가 듣고 싶은 정답과 거리가 먼 핑계들 뿐이었다. 그냥 "네가 아직은 실력이나 경력이 완전하지 않으니 조금  노력해야 한다. 때가 되면 너에게도 많은 기회들을 주겠다." 현재의 불공평함을 인정하는  한마디만 해줬어도 나는 이 모든 일들이 그렇게까지 서운하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거듭 "모든  너의 오해일 뿐이다."라면서 두리뭉실 책임을 전가하는 말을 로봇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따지고 싶은  아직 많았지만 본인 쉬는 날에 일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나를 보러 찾아와서 좋게 좋게 이야기로 풀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이상  입장만 고집하는 것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받아들이는 척을 했던 거였다. 마음속 찜찜함은 그대로 아 있었지만 이 주제로는 더 이상의 진척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는 내일부터 다시 웃으며 인사하자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이 이렇게 일단락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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