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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Jun 12. 2022

27. 을이었던 내가 직장에 할 수 있었던 최고의 복수

 운동에 소질도 없고 흥미도 없던 내가 트레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후로 나는 허투루 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해본 일이 없던 내가 매일 밤을 새 가며 강의를 들었고, 회원에게 신뢰를   있는 트레이너가 되기 위해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을 쏟아내며 운동을 배웠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응대하고 상담하며 피곤이 쌓였어도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웃음을 잃지 않았고, 혹여라도 내게 수업받는 회원이 부상을 입는 일을 막고자 수업 내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그들을 돌봐야 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몸이 녹초가 되어 씻기도 전에 잠이 드는 일상의 반복이었지만, 나는 그런 와중에도 더 열심히 살고 싶어서 일하는 헬스장을  군데  늘렸었다


 내가 새로 일을 구했던 곳은 우리 집과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헬스장이었는데, 오후 시간은 고정적으로 기존 센터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곳에서 오전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율적으로 수업이 있는 시간대에만 출근하는 조건이었는데 점장님은 내가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내게 더 나은 조건으로 고정 파트타임 근무를 제시했다. 때문에 나는 주 3일 오전 6시부터 12시까지는 동네 헬스장에서, 나머지 주 5일은 1시부터 밤 10시까지 원래 일하던 곳에서, 그리고 주말도 이틀 중 하루는 출근을 했다. 단언컨대 나는 그때 그만큼 트레이너라는 직업에 열정이 있었고 그 일을 좋아했었다.


 비록 중간중간 코로나로 인해 휴관을 해야 했을 때에는 소득 없이 쉬어야 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땐 바디 프로필 사진도 찍고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연말 파티도 즐기고 새해와  생일도 기념하면서 시간을 알차게 활용했다. 러나 새해가 되고 많은 것들이 변해도 기존 센터에서의 괴롭힘은 전혀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기나긴 고민 끝에 번아웃이 온 나는 결국 3 초쯤  직장을 동시에 그만둬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는 대형 센터가 사직하는 트레이너에게 부리는 행패에 대해  알고 있었다. PT 1:1 진행되는 만큼 트레이너와 회원 간의 유대감이 매출에 꽤나 크게 영향을 주는 터라 트레이너  명이 그만둔다는   트레이너가 담당하고 있는 모든 회원들에게 환불 요청  컴플레인이 나올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보통은 계약서에 [퇴사로 인한 환불 발생  받았던 성과금을 반환한다.] 조항이 필수적으로 있기 마련인데, 퇴사 전에 무료 노무 상담을 받으며 알아본 결과 그런 조항들은 법적으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했다. 무료 노무 상담을 받으며 나는 그들이 내게 부렸던 행패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제가 정말 출근할 때마다 차라리 이 버스가 사고가 나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 하는 게 버겁고 직장 내 괴롭힘이 심한 것 같은데요. 제가 오늘 당장 그만둬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건가요?"

 "그렇게 되면 퇴직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퇴직금이 없는 상황이라면요?"

 "그러면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 퇴사 의사는 필히 사직서를 제출해야 하나요?"

 "사직 의사를 밝히는 문자로도 가능합니다."


 나는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드리면서 무료 노무 상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아직 출근까지는 2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나는 마음 가는 대로 정오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모르는 동네의 보도블록 길을 하염없이 누볐다. 머릿속에는 나의 동료들과 회원님 얼굴들이 비눗방울처럼 두둥실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지길 반복했다.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천사의 속삭임과 여태까지 당한  생각해 보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동시에 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목적 없이 걸어 다니며 생각하다 보니 점차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 후회를    같은 선택인지는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이토록 무시하고 든 시간을 보내도록 만든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만큼 참았으면  번쯤은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편으로는 '그들이 나를 붙잡고 사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실낱같은 한 가닥의 희망을 품으며 나는 메시지 창을 켰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더 이상 근무가 힘들 것 같습니다. 오늘부로 사직을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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