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예또 Apr 14. 2022

23. 뽀로로도 부러워할 알찬 무급휴가 보내기

 갑자기 생겨버린 무급휴가에 책임질 가족이 있는 동료들은 난색을 표했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동료들은 내심 기쁘기도 한 눈치였다.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좋아하고 수영은 못해도 해마다 물놀이는 빠지지 않고 갔던 나 역시도 트레이너 준비에 치여 어딜 놀러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터라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야무지게 잘 활용하리라 다짐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충동적으로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그때는 이미 성수기도 지났고 연휴기간도 아니었던지라 평소보다 저렴하게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아버지께 내 계획을 말씀드리니 선뜻 본인도 내 여정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하셔서 나도 바로 오케이를 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이번엔 같이 일하는 친한 동료이자 한 살 동생인 H에게 연락이 와서 같이 가평에 놀러 가지 않겠느냐고 묻는 거였다.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제주도 여행 일정을 피해 가평 게스트하우스도 예약했다. 그렇게 나의 알찬 여행 일정이 하나씩 채워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2주 남짓한 휴관기간 동안 나는 동해, 가평, 제주도, 우도 등을 여행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오랜만에 일은 잊고 좋은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재충전되는 기분이었다. 바빠서 제대로 치우지 못한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방도 마음먹고 말끔하게 치우고 밀린 빨래와 방청소도 하면서 '언젠가 해야지, 해야지'하며 미뤄놨던 일들을 싹 마쳐놓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비록 내가 원해서 얻은 휴가는 아니었지만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니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쉬는 기간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원하고 있고 간절하게 바라는 지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가평 여행을 함께 했던 H가 말해주길 술에 취했을 때 내가 그렇게 출근하고 싶다는 말을 계속했다는 거였다. "내가 그랬다고?" 기억이 나지 않아 몇 번이나 거듭 물었지만 H는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대답했다.


  ", 언니가 그랬어. 빨리 다시 출근하고 싶다고. 거기 사람들 보고 싶다고."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다시 출근하는 날. 이상하게 센터에 가서 오랜만에 동료들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쑥스러우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날 익숙한 반과 익숙한 친구들을 보는 건데도 괜스레 뻘쭘한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 같았다. 그렇게 출근을 하고 동료들과 반가운 인사들을 나누고 다시 내 본분에 맞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였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번호로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통화내용을 듣자마자 나는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 보건소인데요. 00일 00시 제주도행 비행기 탑승하셨죠?
기내에 확진자가 발생하여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셔서 전화드렸습니다.
지금부터 당장 자가격리 하셔야 됩니다.
이전 05화 22. 헬린이 수난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