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약속된 이삿날이 다가왔다. 가계약을 하며 집주인아저씨와 구두로 약속한 부분은 이사 전 실내 전체 도배를 해주는 것과 전 세입자 분이 요구한 소정의 가전·가구 비용을 대신 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테리어 업체는 가장 최소한의 비용으로 진행한다는 가정 하에 전체 도배 견적을 80만 원 정도로 책정하였고 그것은 내 월세의 4개월치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 금액을 전부 집주인아저씨에게 요구하는 건 너무 죄송스러워서 나는 조심스레 아저씨께 직접 페인트칠을 할 테니 페인트값만 지원해 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께서는 당연히 가능하다면서 한 달 월세를 빼줄 테니 그 돈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꾸며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다.
나는 그 페인트 구입 비용조차 아끼고 싶어서 집에 와서 중고매물을 검색했다. 나름 투룸인지라 온 벽을 다 칠하는데 생각보다 페인트가 많이 필요했다. 조색이 들어간 페인트는 그만한 양을 다 구할 수가 없어서 결국 완전 흰색으로 다 덮어버리기로 결정을 했다. 중고마켓에서 페인트 세 통과 작업 도구들을 모두 구했더니 총 8만 원 정도가 들었다. 나머지 돈으로는 장판을 주문했더니 딱 12만 원이 들었다. 다 사고 보니 꼭 맞춘 것처럼 20만 원이 들었다.
이제는 몸으로 때울 시간. 이번에도 불쌍하게 된 건 아버지 쪽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억척스러운 딸내미를 키우셔서 늘그막에 이런 고생을 하게 되신 건지. 다행스러운 건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모두 즐겁게 여기신다는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은근히 얼마나 살지도 모르는 집에 굳이 이렇게까지 애를 쓰는 것이 속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셨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은근슬쩍 지저분한 부분만 조금 치우고 그냥 살아도 되지 않겠느냐며 말끝을 살짝 흐리셨다. 하지만 아버지께 물려받은 내 고집도 한 고집하는 최 씨 고집이었다. 단 1년밖에 못 산다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분위기의 내 집에서 살고 싶었다.
벽지용 페인트칠은 총 두 번의 도색작업이 필요했다. 더군다가 페인트가 흰색이라 잘 비치다 보니 때에 따라서는 세 번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계약 때 정한 이삿날에 맞춰 들어가려면 작업을 서둘러야 했다. 전 세입자분이 이사 나간 바로 다음 날, 준비된 도구들을 챙겨 흑석동으로 향한 우리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짐이 빠지고 난 자리엔 얼룩덜룩한 곰팡이들의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우린 일단 가구들을 방 한가운데에 모아 벽을 최대한 노출시키고 페인트가 묻으면 안 될 곳에 보양작업을 했다. 그 다음엔 파렛트에 페인트를 붓고 약간의 물을 섞으면서 바르기 편한 농도로 만들었다. 그다음은 별로 설명할 것이 없다. 그냥 발랐다. 롤러질을 할 때마다 페인트가 팔에 튀고 얼굴에 튀어도 신경쓸 새 없이 바르고 또 발랐다.
처음엔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W자 모양으로 시작해 꼼꼼히 바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벽 한쪽을 다 채우기도 전에 나는 깨닫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발랐다간 오늘 안에 다 못 끝낸다는 사실을. 그 후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냥 닥치는 대로 발랐던 것 같다. 페인트가 바닥으로 튀거나 옷에 묻는 일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냥 마구잡이로 발라대는데도 방 하나를 겨우 다 끝내는 수준에 그치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절망하고 있을 틈도 없었다. 우리는 집 앞슈퍼에서 사 온 카스텔라 빵 한 조각과 우유로 요기를 하고 또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나중에야 깨달았는데 벽을 칠하는 건 그나마도 쉬운 일에 속하는 거였다. 진짜는 바로 천장이었다. 지구의 중력 작용에 의해 페인트는 자꾸 바닥으로 떨어지려고 하는데 문제는 페인트가 바닥에 닿기 전에 내 얼굴이 먼저 위치해 있었다는 거다. 그렇다고 눈을 감고 페인트를 바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얼굴에 닿지 않게 팔을 멀찍이 뻗어 바르려니 팔에 힘이 안 들어가 잘 발리지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다음 날 쓰지 않고 처박아둔 검정 무도수 뿔테 안경을 가져와서 착용한 후에야 수월하게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도구를 써야 하는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초보 도색꾼 둘이서 어설프게나마 1차 도색작업을 마무리하였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든 생각은 '이제 시작인데 언제 다 끝내지'였다. 호기롭게 셀프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막상 직접 뛰어들고 보니 셀프 인테리어란 예상보다도 훨씬 힘든 작업이었다. 젊은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버지는 오죽 더 힘드셨을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또 다짐했다. 나중엔, 정말로, 다시는 이런 일로 고생시켜 드리지 않게 돈으로 멋지게 효도하는 딸이 되어야겠다고. 아버지와 나의 피와 땀이 서린 이곳에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