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양양에서 햇수로 3년을 살았지만서도 손님 오면 대접할 만한 변변한 식당 하나 없다며 투덜거리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자신 있게 데려간 곳이었다. 옆집 김 씨 아저씨를 따라 우연히 가게 되었는데 가격도 저렴한데 반찬이 테이블 가득 깔리더라며 아버지는 유난히 상기된 모습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같이 외식하는 날인데 백반이 뭐야…’ 싶었지만 그런 아버지 앞에서 티를 낼 수가 없어 가만히 아버지 뒤를 따랐다.
8000원짜리 백반 두 개를 주문하자 제육볶음, 생선구이를 중심으로 꽤 다양한 밑반찬과 김칫국까지 빠르게 상차림이 준비되었다. 오기 전까진 별 기대를 안 했는데 막상 와보니 오랜 시간 한식에 목말라있었던 나에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그리워했던 맛이지.’하며 정신없이 먹고 있던 내게 아버지는 이런 얘길 했다.
“너 한창 자랄 때 이렇게 밥을 먹였어야 했는데 내가 음식 할 줄을 모르니까 맨날 똑같은 쉬어빠진 김치찌개만 먹고. 그래서 네가 키가 덜 컸어.”
“덜 크기는 뭐가. 이만하면 됐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그때 생각하면 참 미안해. 영양 공급을 골고루 잘 해줬어야 됐는데 입에 풀칠하기 바빠서 너한테 그런 걸 못해줬어.”
이혼 후 작은 공장에 다니며 사춘기 딸을 혼자 먹이고 입히며 거둬들였던 중년 남성은 다 큰 딸 앞에서 다시 그렇게 죄인이 된다. 아무렇지 않게 덤덤히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늙은 아비 앞에서 홀로 호의호식했던 못된 딸은 목이 멘다. 제대로 된 집밥 한 번 차려주지 못해 맺혀있던 한을 백반집에 데려가 푸는 방법밖에 몰랐던 늙은 아비의 마음을 나는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으로만 바라봤을까.
나는 아버지의 죄책감을 덜겠다는 요량으로 남은 밥과 반찬들을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아버지가 데려온 곳이라 그런가? 괜히 더 내 입맛에 맞는 것 같네?” 하며 너스레를 떠니 어느새 쪼글쪼글하게 말라버린 아버지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살다 보면 가끔은 너무 가깝게 있어서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