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에 없던 전개에 도리어 내가 다시 물었다.
“나 퇴사해? “
그러자 그 동료는 빨리 핸드폰 단체 카톡방을 확인하라며 나를 재촉했다. 점심밥을 먹고 주어진 점심시간 안에 복귀하느라 핸드폰 연락을 확인할 짬이 없었던 나는 급하게 핸드폰을 켜서 새로 온 메시지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금일부로 중국어 AR팀 S모씨와 Y모씨는 본인의 뜻대로 퇴사 처리되었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점장이 보낸 장문의 카톡 메시지의 내용을 함축하면 이러했다. 본인은 여러 사람들의 뜻을 최대한 수용해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많은 사람은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으니 더 좋은 곳 가서 일하시길 바란다. 퇴사 확정난 두 명 제외하고 오늘까지만 일하고 싶은 직원이 더 있다면 언제든 와서 이야기해달라. 이곳은 학교가 아니라 직장인 것 잊지 말아라.
나는 그저 계약서상에 명시되어있지 않은 업무를 시키는 것에 반박했을 뿐이고, 그 뒤에 창고에서 우연히 만난 친한 동료와 그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었다. 이 정도의 불만사항은 회사를 다니는 누군가라도 다 가져봤을 정도가 아니었던가? 고작 이 정도의 일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건 아닐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누구처럼 비겁하게 핸드폰이라는 간접적인 방식을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 메신저를 확인한 즉시 점장실로 찾아갔지만 그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문제의 연락을 받은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찾아올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려워 보였다.
이 모든 걸 확인하고 나자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본인 입으로 강조한 '학교' 아니고 '회사'라는 말과 본인의 일처리 방식이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부하직원이 면담 요청하는 것을 겁내고 자리를 피하는 무능력한 상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것이 진정 본인이 그렇게도 강조하고 싶은 '회사'라는 곳이었던가.
K는 점장실에서 허탕을 치고 다시 매장으로 돌아온 나와 Y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발견하자 종종걸음으로 나와 Y 앞에 서서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우리가 심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얘기 잘 나누고 왔어요?"
"아뇨. 자리에 안 계시던데요."
"그랬구나. 이번 일은 정말 유감이에요."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는데 혹시 뭐 아는 거 있어요? “
"저도 아는 바가 없어요. 점장님께서 왜 그렇게 화가 나신 건지 도통 모르겠어요."
"... 어쩔 수 없죠. 돌아오시면 다시 만나서 얘기를 해 보는 수밖에."
"얘기 결국 해보시게요?"
"당연히 해야죠. 무슨 오해가 있어도 단단히 있는 것 같은데."
"조심해요. 저는... 저는 걱정이 돼서 그래요."
"뭐가요?"
"그냥요. 아무튼 저는 안 싸웠으면 좋겠어요."
"싸워요? 제가 점장님이랑 왜 싸워요?"
"아니 그냥... 그럴 수도 있단 얘기죠. 아무튼 얘기 잘 마무리되길 바라요."
그렇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기고 그녀는 급하게 다시 자리를 떴다. 그녀가 한 이야기를 듣고 옆에 있던 Y는 K가 알고 보면 착한 애일 지도 모르겠다고 얘길 했다. 나는 왠지 쎄한 느낌에 ‘글쎄...'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으니 말을 아끼기로 했다. 잠시 뒤 점장이 자리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와 Y는 다시 점장실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K는 점장실로 향하는 우리의 손을 꼭 잡으며 이야기가 잘 풀리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어색한 삼자대면을 시작했다. 우리가 먼저 오늘 있었던 일들을 터놓으며 어느 정도 불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나도 크게 와전이 된 것 같다며 운을 뗐다. 그러자 점장은 눈 하나 깜빡 않으며 "들은 얘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놈의 '들은 얘기'가 뭔지 우린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 이야기의 내용과 출처를 알지 않는 이상 이 대화에 진척이 생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집요하게 캐물었고 점장은 결국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끈질긴 질문 끝에 드러난 진실은, K가 우리에 대해 있던 일을 부풀려 말하고 없던 일을 덧붙여서 점장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시킨 거였다.
이야기를 듣고 Y는 완전히 넋이 나간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 우리 앞에서 가식을 떨던 K의 모습과 우리 뒤에서의 행각이 도저히 매치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여우 같은 계집의 농간보다 허술한 술수에 꾀여 직원 자르기를 쉽게 알고 경솔하게 자신의 권력을 남발한 이 작자가 점장이라는 직급을 달고 직원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친구들과 '절교'하는 것과 직원을 '해고'하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것은 이 건물에 그 사람 하나뿐인 것 같았다.
우리는 황당한 채로 다시 매장에 돌아왔다.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렸던 K는 우리르 보자마자 한달음에 쪼르르 달려왔다. 그녀는 아직까지 장화신은 고양이의 눈망울을 유지한 채로 우리에게 대화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래, 자기가 한 말을 점장이 전했을지 아닐지 궁금해 미쳤을 테지. 우리는 들은 이야기를 필터링 없이 그대로 전했다. 우리가 이미 당신의 실체에 대해 다 알아버렸다고.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K의 초롱초롱하던 눈빛은 금세 빛을 잃고 시들해졌다가 이내 차가워졌다. 어느새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경멸의 감정이 서려있었다. 그 대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그녀의 대사는 이랬다.
다 알았으면 이제 가서 일이나 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우리에게 등을 돌려 멀어져 갔다. 드디어 우린 가면 아래 위치한 그녀의 추악한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