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놀라운 도시였다. 베를리너의 자부심이 느껴지면서도 외국인에 대한 포용력이 느껴졌고, 오픈마인드인 것 같으면서도 보수적인 부분이 있었다. 베를린의 카우치 서핑 호스트 샤샤는 집 안에 퍼스널 짐을 꾸려놓고 회원들에게 1:1로 PT를 제공하는 헬스 트레이너였다. 그에게는 본업만큼 중요한 부업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에어비앤비에서 베를린 현지 클럽 체험활동을 운영하는 거였다. 클럽을 가는 데에 굳이 가이드까지 필요하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나는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 그의 고객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그를 찾는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베를린의 클럽엔 아주 중요한 규칙이 있었다.
샤샤의 설명에 따르면 베를리너는 그들만의 문화 향유에 굉장히 집착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타지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에 섞여드는 것을 은근히 배척한다는 거였다. 그런 문화 속에서 운영되는 클럽의 규칙은 이러했다.
1. 옷은 검은색상으로 통일해야 한다.
검은색은 가장 심플하면서도 깔끔한 색깔이다. 베를린의 클럽은 아무 옷이나 입고 있는 사람이 아닌, 깔끔하고 단정하게 옷차림을 하고 이 장소에 대한 예의를 갖춘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2. 이 클럽에 와봤던 사람, 혹은 와봤던 사람이 데려온 사람만 이 클럽에 입장할 수 있다.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우리는 샤샤가 사전에 우리에게 공유해 준 정보들을 시험 직전에 요점정리를 급하게 외우는 학생처럼 달달 외워야 했다. 우리는 샤샤와 모의 질의응답을 하면서 이 클럽에 오늘 음악을 트는 DJ의 이름 최소 세명, 이 클럽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하나, 이 클럽의 이름과 간단한 연혁 등을 기억해야 했다.
3. 클럽 안에서의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은 엄격히 금지된다.
때문에 우리는 입장할 때 핸드폰 뒤와 앞에 위치한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인 채 입장해야 했다. 이 스티커는 클럽 안에서 절대 뗄 수 없으며, 때로는 그 스티커가 이곳에 이미 와봤다는 증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날 샤샤의 요청으로 함께 클럽으로 향하게 된 나는 샤샤의 고객 7명과 함께 샤샤의 집에서 이런 정보들을 듣고, 그의 아이템들을 통해 복장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파티 아이템과 복장들을 구비하고 있던 그는 나에게 여성 배관공 의상을 빌려주었는데, 그 옷을 입고 뿌까처럼 양갈래 똥머리를 한 나를 보고 그는 '완전한 베를리너'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그저 관종이라고 치부될만한 스타일인데 그에게선 극찬을 받으니 나는 베를리너의 패션과 유행의 기준은 무엇인지 조금 혼란스러웠다. 아마 의상과 신발에 한해서만 검정의 규칙이 적용되고, 그 외에 헤어나 소품들을 통해 개성을 발산하는 것 같다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샤샤의 리드로 클럽에 도착한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진 채로 입장대기줄에 섰다. 7명씩이나 되는 클럽 초보자들이 한 무리로 입장하는 것은 난도가 높다며 그가 추천한 방법이었다. 나는 네덜란드에서 왔다던 3명의 친구들과 한 무리가 되었는데, 혹시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물어보면 홍콩에서 유학을 하며 만난 사이로 베를린에 사는 친구를 따라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말하자고 작당모의를 했다.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하다 보니 이윽고 우리의 차례가 되었고,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고 좋아하는 DJ와 클럽의 이름, 클럽이 개업한 년도를 침착하게 대답한 우리는 핸드폰 카메라 가리기용 스티커를 붙인 후 가까스로 입장을 할 수가 있었다. 입구에 클럽 이름이 새겨진 간판 하나 없는 클럽도, 면접처럼 시험을 봐야 입장할 수 있는 클럽도 내 생에 처음이었다.
입장 전부터 놀라운 점이 많았던 베를린의 클럽은 내부로 들어서니 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한국,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다양한 클럽을 많이 가봤던 나였지만 베를린에서 본 그런 클럽은 단언 처음이었다. 클럽 하면 떠오르는 지하, 밀폐된 공간, 스테이지로 구성된 공간이 아닌 그냥 큰 건물 하나의 1층을 통째로 클럽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클럽의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큰 마당 같은 야외공간이 나왔다. 한쪽에는 캠프파이어처럼 불을 피워놓고 해먹에 누워있거나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며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공간을 지나가면 건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었다.
건물로 들어가는 좁은 복도를 지나면 여러 방이 나왔다. 어떤 방은 피아노가 있어서 사람들이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고, 어떤 방은 소파만 있어서 앉아서 쉴 수 있었다. 스테이지는 없었지만 각 방에서 동시에 3명의 DJ들이 음악을 틀고 있어서 원하는 DJ의 음악을 골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DJ는 굳이 어리고 마르고 예쁘기만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그곳에는 소위 'DJ'라고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의 젊은 여성이 아닌, 꾸미지 않은 모습의 수수한 중년 여성 DJ도 음악을 틀었다. 테이블을 팔고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돈을 버는 MD들도, 술에 취해 여성에게 매너 없이 행동하는 남자손님들도 없었다. 그곳을 찾은 많은 이들도 이성을 만나러 왔을 테지만, 여성에게 강압적인 부분이 있는 아시아의 클럽문화와 달리 남녀 공히 모든 결정과 결제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이 경험 이후로 베를린은 언제나 내가 유럽에서 1순위로 꼽는 도시가 되었다. 비단 클럽이 재밌어서라기보단 놀 때 제대로 놀 줄 알고 이성을 대할 때 깔끔하게 행동하는 베를리너 문화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딱딱할 것 같았던 독일인에 대한 편견을 말끔히 깨어준 곳도 바로 베를린이었다. 여태까지 영어가 제일 잘 통하고 사람들이 가장 친절했던 도시도 베를린이었다. 내 이런 이야기를 듣던 샤샤는 "독일은 둘로 나뉘어. 베를린과, 베를린이 아닌 곳."이라며 우쭐거렸다.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베를린이 좋아서 그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던 그의 자부심이 그 말에 고스란히 느껴져서 나는 웃으며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