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는 금방 지나갔다. 비록 우리 캠프의 리더 디아나와 단체활동에 협조적이지 않은 엣수시가 책임감 없는 행동을 많이 보여 눈엣가시였지만 그 외에 친구들과는 정이 많이 들어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아쉬운 마음이 점점 커졌다. 다음 행선지로 나는 베를린을 가려고 생각했는데 멕시칸 친구들이 전부 함부르크로 향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마음을 바꿨다. 사실은 앤디가 함부르크에 살고 있다는 이유가 가장 중요했지만.
함부르크로 향한 우리는 숙소비를 아끼기 위해 에어비앤비에서 모든 인원이 다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을 하나 빌렸다. 함부르크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이었는데, 우리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다 같이 돌아다니며 근처 식당의 밥값을 비교하다가 결국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에서 세일을 하는 메뉴로 배를 채웠다. 저녁에는 집에 가서 짐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온 앤디의 가이드를 따라 그가 친구들과 종종 온다던 단골 펍에 들렀다. 우리는 함께 맥주를 마시며 위를 예열했다.
24시간 흥이 넘치던 멕시칸 친구들은 앤디에게 함부르크의 핫한 밤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이야기를 들은 앤디는 고민 없이 우리를 어떤 골목으로 데려갔는데, 이곳은 주말마다 함부르크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이성을 찾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그곳엔 손님들이 노래를 예약하고 무대로 나가서 부르는 가라오케바가 많았는데 그중 직원이 명함을 주면서 공짜 술을 주겠다고 꼬시는 곳으로 우리는 자연스레 들어갔다. 몇몇 친구들은 무대로 나가 노래를 불렀는데, 앤디는 확실히 노래 쪽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하는 태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가라오케 바를 나와서 길을 걷고 있던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 있었다. 바로 대로변을 따라 늘어진 퇴폐업소들이었는데 돈을 내고 들어가면 라이브로 쇼를 감상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한 업소의 문지기 아저씨는 우리 무리를 발견하고서 적극적으로 라이브쇼를 홍보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엔 차마 적을 수 없는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단어까지 언급해 가며 우리의 코 묻은 돈 훔치기에 열을 올렸다. 아저씨는 우리가 학생이니(물론 나는 아니었지만) 정가의 반값인 10유로만 받고 들여보내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원래는 여성은 출입금지인 곳인데 특별히 너희들은 들여보내주겠다고 하는 말에 친구들은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굳이 다른 사람들끼리 정을 나누는 모습을 돈까지 써가며 보고 싶진 않아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우리는 도우너 가게로 가서 주린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9월 중순의 함부르크의 새벽은 꽤나 쌀쌀해서 나는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다. 뭘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가 않아서 나는 자리 잡고 앉아있는 친구들 옆에서 앤디의 등에 고개를 박고 잔뜩 웅크린 채로 눈을 감았다. 잠에 들진 않았는데 피곤했던 탓에 친구들의 목소리가 웅웅대며 귀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친구들이 깨우는 소리에 가까스로 눈을 뜰 수가 있었다. 그러더니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멜리사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도우너가게에 있는 동안 호기심이 남달랐던 멕시칸 친구 두 명이 결국은 우리가 그냥 지나왔던 성인용품 가게로 다시 구경을 갔는데 그곳에서 매춘을 하는 여성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그곳은 코인 노래방처럼 좁은 방마다 여성들이 있고, 시간당 얼마씩 정해진 돈을 주면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호기심과 성욕이 너무나 넘쳤던 그들은 결국 선택하지 말았어야 할 그 길을 가고야 말았고 가장 짧은 코스인 15분만 구입하겠다며 가지고 있던 100유로를 냈는데 돈을 받은 여성이 잔돈도 거슬러주지 않고 서비스도 제공해주지 않은 채 문을 쾅 닫아버렸다는 것이다. 방 밖에서 난리를 피우자 이내 가드들이 와서 상황을 정리했고 그렇게 그들은 돈만 뜯긴 채 내쫓겼다는 거였다. 아마 그들이 외국인에다가 나이도 어리니 얕잡아보고 사기를 친 것 같았다.
물론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나도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둘의 표정을 보니 이건 진짜 바보들이거나 진짜 연기천재들,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성매매가 합법인 나라는 이렇게 매춘이 실생활과 가깝게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놀라웠다. 금기시하니까 오히려 더 하고 싶어서 술과 담배를 하는 일부 학생들처럼, 성이라는 것도 우리나라는 계속 감추고 숨기기만 하니까 사람들이 더 안 좋은 쪽으로 갈구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수록 우리나라에 직면한 젠더이슈나 성범죄와 같은 사회현상들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는 눈이 자꾸 생겨나게 된다. 지금 당장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이 보고 느끼는 건 여행가의 최소한의 의무와도 같다.
다음 날, 친구들은 함부르크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시내구경을 하다가 이내 흥미를 잃고 다시 숙소로 복귀해 어제 못 다 잔 밀린 잠을 이어서 잤다. 낮잠에서 깬 후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친구들을 지하철역까지 배웅했다. 이제 숙소에 남은 건 브라이언과 나 둘 뿐이었다. 어딘가 듬직한 구석이 있던 브라이언에겐 나와 앤디의 관계를 밝혀도 뒤탈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고민상담을 했던 것이다. 내가 함부르크에 있고 특별한 일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가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여태까지의 스토리를 다 듣고 나서 브라이언은 간단하게 답했다.
"그만큼 너를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맞는 말인데 그걸 제3자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가슴이 더 콕콕 쑤셨다. 알면서도 나는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런 연락도, 약속을 잡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 앤디가 너무 야속했다. 원체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밀당도 잘 못하는 성격인지라 나는 내가 지고 들어간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앤디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우리는 다음 날 오후에 시청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처음으로 낮시간에 단둘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일찍이 영상편집을 미리 마치고 약속시간에 맞춰 나갈 준비를 하는데 그에게 연락이 왔다. 급한 일이 생겨 약속을 미뤄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한 후 한 시간 늦춰진 약속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도착했는데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약속을 미루고도 20분을 또 늦었다. '사정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그의 핑계가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닌 것 같아서 그가 더 미웠다.
나는 그와 조잘거리면서 다정히 걷는 시간을 기대하고 나왔는데 그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어딘가 귀찮아 보였다. 시청을 시작으로 쇼핑몰, 번화가 등을 구경시켜 주던 그에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너 손 잡아도 돼?"
"나 손에 땀이 많이 나서 손 잡는 거 싫어해."
그에게 거절당한 나는 괜히 민망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우리의 대화가 나의 일방적인 질문과 그의 일방적인 대답뿐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나는 우리의 이 만남이 점점 설레지가 않아 졌다. 기분이 상한 나는 그에게 대놓고 물어봤다.
"너 오늘 여기에 나온 이유가 뭐야?"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가 빈말이라도 좋으니 내가 보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는 뜸 들이는 시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네가 불렀으니까?"
드디어 참고 참았던 내 인내심이 툭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에게 "방금 그 말 나한테 되게 상처다."라고 숨김없이 표현했다. 그는 변명도 사과도 없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바로 그에게 오늘 만나서 반가웠다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으니 근처 지하철역으로 데려다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했다. 그는 갑자기 집으로 가겠다는 내 반응에 살짝 당황한 것 같았지만 내 요청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일러주는 그에게 나는 잘 가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한 후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지하철에 내려서 숙소로 걸어가는데 자꾸만 눈물이 글썽거려서 앞이 흐릿해졌다. 물론 우리의 끝이 정해져 있더라도 같이 있는 동안만큼은 즐겁게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는데 이런 구차한 결말은 내 예상엔 없던 거였다. 나는 오늘만큼은 맨 정신으로 있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눈에 보이는 마트에 들어가 맥주 두 병을 사서 바로 병나발을 불며 길을 걸었다. 내 생에 그렇게 바보 같고 비참한 날은 또 처음인 것 같았다. 이렇게 또 한 번 금사빠의 흑역사가 쓰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