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박에게
2024년 03월 04일.
2~3월에 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새로운 목표에 불이 붙으면서도 스트레스는 서서히 수위가 올라갔다.
마감이 다가올수록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더 커졌고
운동도 시작했는데 오히려 예민해지고, 피부는 제 마음대로 뒤집어졌다.
왜 나는 늘 스스로 일을 벌여놓고, 그 일 때문에 괴로워할까.
왜 눈물차오르기 직전의 인간이 되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지금,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었다.
즐겁게 시작했던 것들조차 ‘성과’가 되어버릴 때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지내던 시절, 스스로를 ‘물경력’처럼 느끼던 때가 있었다.
숨통처럼 시작했던 인스타툰.
영어 공부 탈출구이자 그냥 재밌어서 하던 작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잘해야 하고”, “지원금도 따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전문성도 보여줘야 하고"
이런 생각이 덕지덕지 붙으면서
즐거움은 불안으로, 도전은 부담으로 조용히 변질되었다.
사실, 나는 워커홀릭이다.
퇴근 후, 주말, 이동 시간. '멍...'이란 게 없다.
라디오 듣기, 책 읽기, 업무 정리, 간단한 업무 처리,
영어 기사 읽기, 표현 정리, 필사, 운동, 취미 클래스, 전시회, 영화관.
나에게 ‘쉰다’는 건
내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아무것도 안 하는 쉼’은 상상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친구가 “주말에 그냥 누워만 있었어”라고 하면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그럼 유튜브도 안 봤다는 거야?
음악도 안 들었어? 인스타도 안 했다는 건가?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잘 쉬는 사람이다.
근데 그 ‘쉼’은 하루짜리가 아니라, 최소 10일짜리여야 한다.
웃기지만, 이게 진실이다.
난 끝내주게 게으르며 아주 잘 쉰다.
2022년에 첫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일하던 회사를 퇴사하고
45일 동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때의 나는 정말로 ‘쉼’을 했다.
한국 친구들과 연락 거의 끊고, 현지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이야기 나누고,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자고 싶으면 자고,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미술관에서 그림도 그리고, 어디선가 공연을 보고, 영화를 보고...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싶지 않아 한 도시에 오래 머무른다.
그래서
꽉 채워 일하고, 성과를 내고,
그 뒤에 훌훌 떠나는 사람이다.
그전까지는 쭉, 열심히 불태운다.
강박과 욕심 사이의 나
나는 단순한 직장인이 아니라 ‘전문가’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아마 그래서 완벽주의가 강박으로 변해버린 것 같다.
일과 삶의 경계가 없고, 그게 이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주말인지 평일인지 흐릿하고, 명절이 언제인지도 잘 모른다.
좋아하는 분야가 생기면 끝까지 파고, 그 기쁨을 주변에 나누고 싶고,
일에 관한 건 미루는 게 너무 싫다.
그래서 계속 본다.
보고, 고치고, 또 본다.
성장을 위한 투자는 절대 아끼지 않는다.
책 사고, 강연 듣고, 스터디하고, 관련된 일을 더 벌리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그리고 결국, 나의 강박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나를 멀리 끌고 가는 추진력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질식시키는 족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숨구멍을 만들기 위해
작고 단순한 루틴들을 붙잡는다.
기록하고,
정리하고,
산책하고,
환기하고,
물 마시고,
스트레칭하고...
이 별것 아닌 습관들이
내 안의 강박을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작은 숨구멍이 된다.
완벽해야 한다는 그 촘촘한 마음에서
하루에 1mm씩 멀어지는 연습.
너무 멀어지지는 않되,
너무 가까워지지도 않게.
그 정도의 거리에서
나는 나를 다시 조율해 본다.
...
2주간 무기력으로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발버둥만치다
다시 열어본 일기에서 발견한 글
요즘은 종일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나날도 보내고 있다.
나의 상황과 마음을 더 들여다보고
언젠가 요즘의 생각도 정리해 보려 한다.
⛵ 예도하, 오늘도 강을 건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