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애쓰기 싫다—평균의 삶 바깥에서
감사하게도 12월은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두 가지 행사 통역을 다녀왔다.
그리고 12월 10일 자로 올해 일은 끝이 났다.
그동안 이 도시, 저 도시를 옮겨 다닌 탓에 열흘 동안
수원–서울(2일 왕복)–수원–부산–대전(1박)–상주(2박)–수원
을 돌며 온몸의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이틀은 내리 침대에 누워 잠만 잤고, 눈을 뜨니 12월의 절반이 지나 있었다.
겨울은 비수기다.
개인 작업을 제외하고는 '앞으로 예정에 있는 일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망할 놈의 불안과 걱정이 다시 올라왔다.
명확한 이유가 아닌 이상 회사로 다시 갈 생각은 없다고 여러 번 다짐했는데도
생활비, 다음 출판과 그림 제작 비용, 내년 해외 출판 일정까지 떠올리다 보니
걱정은 소시지처럼 줄줄이 딸려 나왔다.
그때,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인하우스 통번역사 헤드헌팅 알람이 울렸다.
띠링, 띠링.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다시 지원을 해야 하는 걸까?
1, 2년 버티기를 해야 하는 걸까?
그건 지난 몇 년간 반복했던 패턴이 아닌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회사에 가지 않기로 했으면서
먹고사는 문제에 다시 마음이 쪼그라든다.
한국에 돌아와 일 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니
다들 가정을 꾸리고, 정착을 이야기하고,
집과 투자, 자녀 계획을 말한다.
나는 그중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저 꿈을 좇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재능과 능력이 있다면 벌써 길이 보여야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또 다른 직업을 고민해야 할까.
이런 생각 끝에 해가 떠서야 잠들고,
생활 리듬은 다시 무너진다.
돌아보니 집안은 쓰레기장이 되어있다.
돈을 버는 행위는 아니었지만 나는 사실 꽤 열심히 살고 있었다.
다개국어로 글을 쓰고 표현하는 미래를 그리며 제2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내가 이끌었던 달력 프로젝트 그림을 마무리하고 2026년 달력 제작 주문을 넣었고,
이제는 ‘나’라는 1인 기업을 상상하며 사업자 구상도 하고 있다.
본업도 놓치지 않겠다고 영어 공부를 하고,
멀리 오래 일하기 위해 격일로 운동도 나갔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렇게 애쓰면서 살고 있지?"
숨이 턱 막혔다.
애를 쓰지 않은 순간이 없다.
큰 일은 물론이거니와 사소한 일 하나 할 때도.
일이 없는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
하릴없이 모니터를 보는데도 애를 쓰고 있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
그가 상경하며 6년 만에 다시 만났다.
조종사를 꿈꾸다 동기부여 컨설팅 전문가로 진로를 튼 그는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지만, 이전보다 훨씬 평온해 보였다.
내가 사는 동네로 온 그를 안내하며 이것저것 설명하자
그가 말했다.
“왜 그렇게 애써? 지금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편해?”
“아니.”
“그럼 왜 그렇게 해?”
나는 분위기를 풀고 싶어서, 어색할까 봐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난 지금 엄청 편안해.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리드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네가 편한 대로 해.”
그 말 이후,
나는 말하고 싶을 때 말하고 조용히 있고 싶을 때 조용히 있을 수 있었다.
표정도 한결 편해졌다.
그는 계속해서 내 꿈을 응원해 주었으며 내가 지금 방향을 잘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너무 애를 쓰지 말라고 했다.
해가 갈수록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실행하는 또래’는 줄어드는 것 같다.
나 또한 언제 이 삶의 방향이 바뀔지, 바뀌지 않을지 모른다.
내 것을 만들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
이런 성향의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있을까. 해외에는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애쓰지 않아도 나 다움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남들처럼 살려고 너무 애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애초에 시작부터 다른 방향이었는데
평균의 삶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해서 더 힘들었던 건 아닐까.
남과 비교하지 말 것.
남을 찾아보지 말 것.
그리고 너무 애쓰지 말 것.
⛵ 예도하, 오늘도 강을 건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