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통번역사로 살아남기 20

오늘 백수 됐는데 15만 원 질렀습니다

by 예도하
부정을 부정하지 말기


(2026년 1월, 비수기의 한가운데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과거의 기록을 정리해 본다.)



한 달간의 APEC 행사 준비 번역 프로젝트가 끝났다.
반년 간의 통역생활이 마무리되고 한국에 돌아온 직후에

딱 한 주 숨을 돌렸을까 말까 한 시점에 맡은 감사한 일이었다.


최종 번역을 마치고 나면 다음 주부터는 본 APEC 행사의 시작.

사전 의뢰에 따르면 본행사 3일 동안 운영 관련 통역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마음 한편이 묘하게 싸했다.


나, 경주 출장 가는 건가? 안내 연락이 너무 없는데.


역시 인간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최종 번역을 납기하던 요일인 금요일 저녁까지
행사 통역도 의뢰한 고객사에서 아무 소식이 없었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본행사가 시작인데 언제 지방 행사장으로 가야 하는지,
업무 세부 사항은 무엇인지, 통역 급여와 통역사 숙소는 어떻게 되는지
그 어떤 안내도 오지 않았다.


먼저 마음을 정리했다.

기대를 내려놓고, 마음을 비웠다.


조심스레 통역 행사에 대해 문의하자 돌아온 답변은
예산상 통역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는 한 문장이었다.


예상했지만 막상 글로 보니 또다시 아찔했다.


점점 통번역 시장은 과포화되고,
베테랑들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


프리랜서 시장에 새롭게 뛰어든 나 같은 사람에게

일이 잘 잡히지 않는 것도 현실인데
이미 하기로 한 행사마저 취소되니 멘털은 다시 흔들렸다.


지난주에만 20개가 넘는 행사에 지원했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엔 그보다 더 많은 지원서를 넣었지만
아직은 무소식이다.


9–10월은 분명 행사 성수기인데 성수기에 한가해져 버린 사람, 나야 나.


헤드헌터의 인하우스 제안 연락은 종종 온다.
하지만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면 1년, 2년 뒤
또 같은 고민을 반복하게 될 게 분명했다.


결정적으로

이제는 혼자서라도 무언가를 꾸려나가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땅에 헤딩하고, 수많은 실패와 고생을 겪더라도.

전문가로서 내 입지를 다져나가거나,
아니면 통번역이 답이 아니라 판단하고
다른 길로 방향을 틀거나.


어쨌든
결정을 미룰 수는 없었다.


얼마 전 이런 영상을 보았다.

인간의 뇌는 ‘하지 마’ 같은 부정 명령을
직접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대상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이 방에 코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가 더 선명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스키 선수들은 나무 장애물을 피하려고
‘나무를 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는 어디에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했다.


나도 8월 내내 ‘왜 나는 안 될까’라는 질문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나는 결국 어디로 가고 싶은가.’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시간이 주어졌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난 반년 간 거친 업무 환경에 무뎌진 언어 감각을 다듬고,
특정 업계에만 익숙해진 사고를 다시 말랑하게 만들어야지.


또 오랫동안 생각만 해오던 예술 영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계획을 세워야지,


오래 일하려면 체력도 필요하니까 운동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다음 주 행사 통역은 불발이 되었고,
나는 읽고 싶었던 소설 두 권과
이코노미스트 구독을 연장하는 데 15만 원을 썼다.


일이 끊겼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일을 하기 위해 쉬어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정신없이 일할 때는 그렇게 쉬고 싶어 하면서도,
막상 진짜로 쉬게 되면 왜 이렇게 불안해지는지.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넓게 보려고 한다.




⛵ 예도하, 오늘도 강을 건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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