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신년회와 이른 새해 시작
나의 좋은 친구이자 프리랜서 동료인 N의
늦은 신년회 초대를 받아 오랜만에 부산에 길게 다녀왔다.
역마살은 없지만 떠돌이인 나는 부산에 갈 일이 있으면 그의 에어비앤비에 묵는다.
남는 방 하나를 벌써 4~5년째 운영 중인 친구의 집에는
몇 년 전부터 귀여운 갈색 강아지도 함께 살고 있다.
사람을 낯설어하던 시절부터
이제는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까지 지켜봤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걸어서 5분 남짓.
그 집은, 어디 마음 붙일 곳 없는 내게 몇 안 되는 거의 유일한 안식처다.
1월이 다 지나간 마지막 날에 여는 신년회라니.
N은 그간 숙소를 거쳐 간 사람들 중 자신과 결이 비슷한 몇 명을 초대했다고 했다.
5시간쯤 일찍 도착해 행사 준비를 도왔다.
간접 호스트 체험을 제대로 했다.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건
이렇게까지 많은 디테일과 정성을 쏟는 일이구나.
그 마음을 배웠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호스트도 아닌 내가 괜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낯선 사람들을 대면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N은 내 사회성과 사교성을 믿고
‘내향인 테이블’에서 활약해 주길 기대했지만,
내향인력과 무기력이 한껏 올라온 상태의 나는
부산에 온 것만으로도 큰 용기를 낸 참이었다.
하나둘 게스트들이 도착했고, 인사를 나눴다.
걱정과 달리, 이번 모임에서는
어디서나 늘 듣던 난감한 질문을 단 한 번도 듣지 않았다.
깜빡하고 있었던 사실 하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N과 결이 맞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
괜히 평소 사회생활하는 모습의 내가 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나’로서 늦은 신년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묻고 싶으면 묻고,
먹고 싶으면 먹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요즘의 나는
누군가를 위해 애써 에너지를 끌어올릴 여유가 없으니까.
조용조용하지만 화기애애했다.
경청과 배려가 있었고, 마음이 편했다.
물론 에너지는 소모됐다.
하지만 벅차게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으레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소모였다.
그래서 평소라면 꺼내지 않았을
내 직업 이야기도 조금 했고,
“올해 목표는 프리랜서로 살아남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소소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왜 이 말 한마디가 그렇게 버거웠을까.
아직 음력 새해는 오지 않았으니
이건 늦은 신년회가 아니라
이른 2026년 신년회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주말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자취방으로 돌아와
사흘을 꼬박 쉬었다.
부정적인 기운에 눌린 게 아니라,
고만고만한 배터리가 방전된 뒤
그 틈으로 무기력이 다시 스며든 것이다.
오늘, 목요일이 되어서야 집 앞 카페에 나왔다.
쿠폰에 도장 열 개나 모았지만
쿠폰을 보여주며 고른 공짜 메뉴를 직접 주문하는 일이 버거워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새 쿠폰을 다시 받았다.
라테 하나를 앞에 두고 책을 펼쳤다.
한 주 내내 넘기지 못하던 책장이 드디어 넘어갔고, 절반까지 읽었다.
프리랜서 번역가 동료에게 하루에 하나라도 약속한 일을 하면 인증사진을 보내기로 했다.
책 인쇄 견적을 알아보고 지금 자고 있을 바다 건너 E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새해 주간까진 어설프지만 홈페이지를 만들 것이다.
4월 전 신간을 목표로 했던 글도
새로운 아이디어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겪은 일에서 시작해 볼까 생각했다.
그래, 프리랜서니까
매일 조금씩
할 일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늦은 새해 다짐이
나에게는 이른 새해 다짐이기를 바라며,
이번 주의 기록을 남긴다.
⛵ 예도하, 오늘도 강을 건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