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는 통역만 하는 사람일까? (2)
통역사로 살아남기 위한 도구는 ㄴㅊ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약속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중요하다.
개인 약속에서도 늦는 것을 싫어하지만 일과 관련된 약속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인천까지 꽤 멀었기에 충분히 일찍 집을 나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출근 시간의 인파 속에 섞여 나도 일을 하러 가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과연 매일 이렇게 출퇴근할 수 있는 사람일까.
행사가 며칠 정도라면 사람들 사이에 끼이고 치이며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출퇴근을 매일 해야 한다면 나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지하철 안에서 준비를 했다.
헤어 관련 용어를 찾아보고 디렉터의 발음을 미리 들어보고
그가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해 영어 표현을 정리했다.
통번역 일을 하며 늘 느끼는 것이 있다.
같은 영어 단어가 산업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쓰이는 지다.
예를 들어 parting.
보통은 ‘나누다’ 정도로 떠올리겠지만 미용 업계에서는 바로 가르마를 뜻한다.
가르마 선을 기준으로 머리카락이 좌우로 나뉘기 때문이다.
이런 자료를 찾아보고
입도 풀어가며 워크숍 장소에 도착했다.
행사 시작보다 꽤 일찍 도착해 샵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살폈다.
샵의 분위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미용 업계가 원래 이런 분위기인지,
아니면 이번 디렉터가 정말 거물이라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다시 떠올랐다.
“통역사가 눈에 띄어서는 안 됩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통역사는 수행 통역이자 비서였다.
모델을 선정하는 모델 콜도 통역하고 스태프 상황을 살피며
행사 시작 시간을 디렉터에게 안내했다.
워크숍이 시작되자
참여 미용사들이 모델에게 진행할 디자인을 설명했고
디렉터는 돌아다니며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통역했다.
샵 안팎에서 디렉터가 요청하는 것들,
스태프와의 대화,
작은 상황들까지.
약 세 시간의 워크숍이 끝났을 때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샌드위치를 급히 먹고
이를 닦고
서울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퇴근 시간 교통 체증 때문에
리허설 시간이 늦어질까 봐
차 안 분위기는 날카로워졌다.
뒤쪽에 앉아 있던 나는
조용히 소화제를 꺼내 먹었다.
서울 행사장은 약 150명 규모였다.
무대 리허설 시간도 촉박했다.
마이크 음량과 자료 실행만 겨우 확인하고
바로 행사를 시작했다.
그 순간 통역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치.
정확히 말하면
상황을 읽는 감각이다.
클라이언트는 통역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것을 원치 않는 성격이었다.
교통 체증 때문에 행사 시작도 늦어졌다.
그래서 더 매끄럽게 진행해야 했다.
청중은 내 통역을 듣는다.
디렉터와 티키타카 하듯 말의 흐름이 끊기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
무대에서 디렉터가 사용하는 포인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당황하지 않고 스태프를 찾고 상황을 설명했다.
관객에게도 간단히 상황을 안내했다.
문제를 보니 포인터가 스크린 방향을 향해야 작동하는 장치였다.
디렉터에게 사용 방법을 설명하며 중간중간 관객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발표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이후에는 모델을 무대 위에 초대해 오늘의 헤어 디자인 시연이 이어졌다.
디렉터, 모델, 통역사,
그리고 카메라 감독.
모두 함께 무대에 올랐다.
150명이 넘는 관객이
무대 위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제는 카메라였다.
카메라 감독님도 내 통역을 들으며 상황을 파악하다 보니
정작 얼마나 헤어를 잡고 어떤 각도로 잘라야 하는지
보여줘야 할 장면이 잘 잡히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관객의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
작업을 볼 수 있는 위치를 잡았다.
그리고 감독님에게 손짓으로 촬영 위치를 안내했다.
베테랑 감독님은 내 사인을 바로 이해했다.
나는 통역을 하면서도
큰 스크린으로 송출되는 화면을 확인했다.
감독님의 동선,
나의 동선,
디렉터의 위치.
모두를 동시에 고려하며 움직였다.
통역사는 단순히 말을 음성으로 옮기는 사람이 아니다.
상황을 읽고 예기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며
행사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눈치이자, 전체를 보는 시야다.
그렇지 않으면
행사가 어긋나거나
참여자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나는 통역사지만
동시에 이 행사가 잘 마무리되도록 돕는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하다.
언어만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무대 위와 뒤에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여러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또 이 모든 과정이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행사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이후 이틀 동안 비슷한 프로그램이 이어졌고
첫날의 경험 덕분에 더 자연스럽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행사가 끝날 때마다 한·일 대표와 디렉터가
통역 퍼포먼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일할 때는 이런 직접적인 피드백을 느끼기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둘째 날에는 미용 업계 관계자 몇 명이
행사 후 무대 구석에 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미용 전문 통역사세요?”
미용 통역은 처음이라고 하자
통역이 너무 자연스럽게 잘 들렸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특히 마지막 날.
시연이 예상보다 빨리 끝날 것 같아
남은 시간에 Q&A를 진행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 프로그램은 수년간 한국에서 진행됐지만
질의응답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디렉터가 초기에 처음 질의응답을 했을 때 질문의 요지와 분위기가 좋지 않아
이후에 절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청중 반응이 좋았다.
내 직감도 이번에는 다를 것 같다고 느껴졌다.
진행고,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현업 헤어 디자이너들이 디렉터의 디자인 철학, 영감, 업계 고민 등
좋은 질문을 쏟아냈다.
좋은 질문에는
좋은 답변이 따라온다.
좋은 재료와 셰프가 있다면
통역사는 그 과정에
고소한 기름을 두르고 깨를 뿌리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넘쳐나는 질문을 겨우 마무리하고 단체 사진 촬영까지 끝냈다.
헤어지기 전 한국 대표가 말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Q&A가 잘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표정을 읽기 어려웠던 일본 대표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영어 통역사 당신 덕입니다.”
3일 동안 소화제와 영양제, 카페인으로 버텼지만
보람은 확실했다.
그리고 내일.
나는 또 동시통역을 자진했던 세미나에 간다.
스불재가 아니라
스불챌(스스로 불러온 챌린지)
오늘도 나는 강을 건너는 프리랜서 통번역사다.
⛵ 예도하, 오늘도 강을 건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