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의 AI와 포스트휴머니즘 미학 - 오희숙 외 5인
나의 대답은 언제나 '아니'였다. AI(인공지능)가 만드는 음악은 수많은 확률과 계산속에서 이루어진 수학적 결과물 혹은 모방이라고 생각한다. 작곡가로서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AI는 현대음악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음악이 적정선의 규칙 내에 있었던 조성음악 시기와는 다르게 지금의 음악은 해체된 음악이라고 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음악은 작곡자의 의도를 알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다르게 와닿기도 한다. 이런 음악을 어떻게 알고리즘의 분석으로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많은 것들이 해체되고 각자의 생각이 곧 음악이 되는 지금, AI 음악을 연구하면서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과거의 사람인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굳이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알고리즘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 현재의 음악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 시대의 음악은 그 시대였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그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쌓아온 발자취에서 나온 음악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것은 베토벤 교향곡이라고 할 수 없다. 홀로 굳건하게 다짐했다.
음악 하는 한 지인이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다'라며 이 책을 소개해 줬다. 책의 필자들은 나의 굳건한 다짐과는 다르게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 작곡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 또는 협력자로 인식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창작, 교육, 미학 세 부분으로 구성하여 설명했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AI 음악에 대해서 부정적이기만 했던 나의 시선이 조금 다른 각도로 변화했다. 어떤 부분이 나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음악학자 원유선은 '20세기 초 불협화음에서 출발하여 소음과 침묵까지 경계를 확장해온 음악은 이제 인간 이후의 음악을 재현해 내기 시작했다.'라며 디지털 컨버전스 음악(Digital Convergence Music)을 설명했다. 디지털화를 매개로 서로 다른 정보가 융합하는 음악으로 세 작곡가의 곡을 소개했는데, 그중 나에게 가장 충격이었던 음악 하나가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pt3lmSFW3k&t=23s
페터 아블링어(Peter Ablinger)의 <노래하는 신>이다. '목소리의 탈 경계화'라는 타이틀로 이 곡이 소개되었다.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이 현대음악을 들으면 무섭다고 하는 말을 공감하지 못했었는데 이 곡을 듣고 그 감각을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 사람이 말하는 것은 아닌데 텍스트의 발음이 들린다. 유기체와 기계, 남자와 여자,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경계에 균열이 공포로 다가온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원유선의 설명으로 공포심은 덜해지고 흥미로움이 자리 잡았다.
작곡가 이돈응은 자신이 제작에 도전했던 음악 연주 로봇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제까지 제작된 음악 연주 로봇들의 한계와 그를 토대로 자신이 보완하여 제작한 로봇 세 가지를 소개했다. 구상부터 로봇을 만들면서 생각했던 요소 하나하나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자음악도 처음에는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AI가 제한적이게나마 연주하는 악기가 등장한 지금 AI 음악의 상용화가 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학자 안창욱은 국내 최초로 AI 작곡가 이봄(EvoM)을 제작하여 활동하도록 한 장본인이다. 안창욱은 AI 작곡의 다양한 원리를 설명하며 다양한 AI 작곡가를 소개해 주었다. 아무 정보 없이 AI 작곡가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진짜 작곡가의 음악과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아이바(Aiva)'라는 AI 작곡가의 음악을 검색해서 감상해 보았는데 나였어도 구분하기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안창욱은 인공지능 작곡가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했다. 동시에 인공지능 작곡가를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 창작 방식을 가능케하는 도구 또는 협력자라고 인식하고 공존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교육학자 곽덕주는 AI 기반의 음악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설명해 주며 미래 음악교육의 패러다임을 전망했다. 보다 학습자 주도적이며 참여적이며 타 예술 장르나 삶과 융합적인 음악교육에 대해 기대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재 기술은 발전하고 있으나 '학습자 주도적'이라는 말과는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좋지 않게 적용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AI를 이용한 적극적인 음악적 경험을 토대로 음악을 배워야 하는데 음악적 경험을 하는 '기술'을 배우는 시스템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개인적인 생각이며 교육에 대한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든 의문일 수 있다.
음악학자 오희숙은 인터넷과 유튜브의 활성화에 따라 변화된 현대음악계의 상황에서 AI 창작음악을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인 포스트휴머니즘으로 접근하고 있다. AI 음악의 창의성, 주체, 미적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펼친 이 파트는 생각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AI 음악은 창의적이지 않은 모방의 산물이다'라는 생각에서 나왔던 나의 굳은 결심은 '음악사에서 독창성은 절대적인 예술의 척도가 아니다' 라는 말에서 산산조각 났다. 머리를 한대 맞은것 같았다. 맞다, 나는 알고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이미 독창성이라는 것은 미적 척도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 여기서 나의 선입견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오희숙은 현대음악 안에서도 청중과 비평가의 거센 반발은 비일비재했다고 말한다. 이것도 알고 있었다. 완벽한 설득이었다. 나는 언제나 있던 새로운 물결처럼 AI 음악은 이미 시작된 새로운 시류이며, 이를 받아들이고 공부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철학자 천현득은 AI 예술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심층적으로 전개했다. '창조'에 대한 탐구가 주를 이룬다. 창의성이라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참신한 인공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렇게 치면 이미 AI는 상당히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더라도 창조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결국 창작물이 창의적인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그것은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AI의 활동은 진정으로 창의적인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난 아직도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포스트 휴머니즘'시대에 도래했다. 차라리 다행이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나 현재인척하는 과거에 얽매여있었으리라. AI가 발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음악에 닿기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현재는 큰 착각이었던 것을 안다. 현재의 AI의 음악이 수학적 계산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 음악은 더욱 발전할 것이며 멀지 않은 때에 낯설지 않은 음악의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더욱더 공부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