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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Jun 07. 2022

베토벤이랑 대결한 엉터리(?) 피아니스트

다니엘 스타이벨트

다니엘 스타이벨트(1765 ~ 1823)

 1765년에 태어난 스타이벨트는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성격이었다. 때문에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고 한다. 1786, 20 초반이었던 그는 <폭풍 론도> 작곡하고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1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성공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자리매김했다. 자리를 잡는 듯하더니 탬버린 연주자와 결혼하고 다시 여러 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을 여행하며 살다가 러시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스타이벨트는 성격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하다. 해롤드 쇤베르크는 스타이벨트의 행실에 대해 '행동은 거칠었고 허영이 굉장했으며 사생활은 비참했다'라고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브 음악사전 초판에는 병적인 도벽의 희생자라고 기록되어있었다. 그랬던 그는 자신의 고국 독일에서는 외국인 행세를 하며 독일어를 못하는 체했고, 고향인 베를린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의 행동에 혐오를 느껴 음악회를 거절하기까지 했다. 빚에 몰려 도망쳤고, 다른 출판사에게 전에 팔았던 음악을 약간만 변형해서 다시 판매하는 등 출판사를 속여 잇속을 차리던 이상한 사람이었다.


프라하 연주회

 스타이벨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다. 바로 토마섹이 스타이벨트의 프라하 연주회에서 남긴 이야기이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당시, 스타이벨트는 프라하 연주회를 위해 가졌던 오케스트라 연습시간에 리토르넬로만 연습시켰다. 주제가 되는 음악이 아닌 뒤에 붙는 음악만 연습시킨 것이다. 정작 중요한 주제음악은 집에서만 비밀스럽게 연습했다. 현재의 시선에서는 특이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이 행동은 자신의 음악을 지키기 위해 타당한 행위이긴 했다.

 그리고 사건은 음악회 당일에 일어난다. 음악회의 시간이 7시인데 스타이벨트가 한 시간이나 늦게 온 것이다! 토마섹은 이 행동에 대해 '허영과 자만에 빠져 일부러 늦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다리던 관중들은 화내다 못해 지쳤고, 관현악 단원들은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스타이벨트는 그제야 나타나서는 숨을 헐떡이며 무대에 올라섰고, 관현악단에게 부랴부랴 악보를 나눠주고 서곡 연주를 시작했다.

 음악회가 끝날 무렵에는 유명한 노래를 가지고 즉흥연주를 시작했다. 토마섹은 이 연주의 수준이 '예술가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정도'라고 표현했다. 즉흥연주라고 한 것이 C장조의 주제를 트레몰로로 몇 번 반복하다가, 그 중간쯤에 오른손으로 몇 번의 짧은 음계 음형을 집어넣는 것이 고작이었다. (극단적으로 설명하자면, '낮은 도'와 '높은 도' 단 두 음만 번갈아 치다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몇 번 반복하고 끝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2~3분 후 이 형편없는 곡을 끝내고 나서는 환상곡이라고 불렀다.


스타이벨트의 음악성에 대하여

19세기 말 예술 역사가 '오스카 비'는 스타이벨트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찬사에 더럽혀져, 그는 쓰레기 같은 전쟁 음악, 뇌우, 주신(主神) 노래 등을 대동하고 유럽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음악회에서는 부인이 탬버린을 흔드는 동안 그는 이 곡들을 내키는 대로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이벨트는 파리에서 가장 성공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가졌었다. 그는 결혼한 탬버린 연주자와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스타이벨트가 트레몰로로 건반을 오르내리며 휩쓸듯이 치고 부인은 미친 듯이 탬버린을 흔드는 광경을 당시 관객들이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프라하 연주회에서도 스타이벨트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부인이 탬버린으로 반주를 넣었는데, 귀족들이 새로운 악기 배합에 흥분하여 숙녀들 사이에 탬버린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의 천재성을 엿볼  있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스타이벨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인 8번에서는 마지막 악장에 합창이 등장한다.(해당 악보는 소실됐다.) 음악 역사상 교향곡이 아닌 피아노 협주곡에서 합창 피날레가 등장했던 음악은 부조니와 스타이벨트   뿐이다. 그리고  때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완성되기 전이었다. 더해서 그는 쇼팽 이전의 어느 피아니스트보다도 페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트레몰로의 대가로 알려졌다.

 이런 천재성에 대해서 해롤드 쇤베르크는 '그것이 전부였다.'라고 말한다. 그냥 빠르게'만' 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스타이벨트는 느린 악장을 칠 줄 몰랐다. '당시 페달을 가장 잘 다루는 피아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페달이 중요한 느린 악장을 잘 다루지 못한다니..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자신의 이런 단점을 알고 소나타를 대부분 빠른 악장으로 구성했지만, 왼손 테크닉이 부족해서 말이 많았다고 한다!

 

베토벤vs스타이벨트

 1800년, 스타이벨트는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의기양양하게 비엔나로 왔다. 비엔나에서는 젊은 베토벤이 활동하고 있었고, 둘은 어떤 백작의 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는 귀족들이 실내에서 음악회를 여는 경우가 많았고 유희의 일종으로 경연대회라는 것이 굉장히 유행했었다. 귀족들이 두 음악가가 대결하는 것을 구경했던 것이다. 스타이벨트와 베토벤이 만났던 그때도 자연스럽게 대결하는 구도로 갔던 듯하다.

 베토벤은 새로운 B플랫 장조 피아노 3중주의 피아노 파트를 연주했다. 스타이벨트는 생색내듯이 건방진 태도로 듣고 나서는 베토벤한테 '자네 나쁘지 않네'라는 식으로 몇 마디 칭찬해줬다. 그러고는 피아노에 앉아 자신의 장기인 트레몰로로 자신의 음악을 쳐내려 갔다. 베토벤은 이를 듣고 별 반응은 없었다.

 일주일 후 둘은 같은 백작의 집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스타이벨트가 피아노와 현을 위한 화려한 즉흥곡을 준비했는데 모티브(주제)가 지난주에 들었던 베토벤 피아노 3중주에서 따온 것이었다. 스타이벨트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황홀경에 빠졌다. 한 성깔 했던 것으로 유명한 베토벤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스타이벨트의 첼로 악보를 집어다가 피아노 위에 거꾸로 놓고는 모욕적인 태도로 한 손가락만으로 주제를 연주했다. 그리고 매우 화나고 흥분해서는 미친 듯이 즉흥연주를 했다. 베토벤의 너무 훌륭한 즉흥연주를 들은 스타이벨트는 베토벤이 연주를 끝내기도 전에 몰래 방에서 빠져나갔다. 이후에는 두 번 다시 베토벤을 만나지 않기 위해 비엔나에서 어딘가에 방문할 때 무조건 베토벤의 방문 여부를 확인하며 피해 다녔다.


제목에 물음표가 붙은 이유

 2015년, 올리비아 파이니에가 스타이벨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글을 썼다. 필자는 스타이벨트는 음악 역사에서 잊힌 작곡가 중 한 명이며, 스타이벨트를 언급할 때는 항상 폄하하기 위해 언급하는데 그런 이야기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글을 시작했다.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베토벤과의 피아노 경연 일화의 출처를 언급한다. 게르하르트와 리스가 쓴 베토벤 전기의 두 단락이 원본인데 알고 보니 이 두 사람은 대결 당시에 비엔나에 없었다는 것이다. 단 두 단락으로 여러 음악자들과 재미있는 일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확인되지 않고 반복되었고, 올리비아가 아는 한 이 사건에 대해서 동시대의 정확한 증언은 없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 사이에 대결이 있었고, 베토벤이 우세했던 건 확실하긴 한데 스타이벨트가 굴욕을 당하고 도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스타이벨트가 경연에서 빠져나갔던 이야기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콘서트를 하러 비엔나에 온 스타이벨트는 베토벤이 참석한 리셉션에서 연주했고 큰 박수를 받았다. 이후에 그는 동경했던 피아노 연주자이자 유명 작곡가(베토벤)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드러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베토벤에게 수차례 간청했지만 베토벤은 "적절한 음악이 없다"면서 거절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요청에 거절할 수 없었던 베토벤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즉흥연주를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애초에 대결구도가 아니라 베토벤이 스타이벨트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 된다. 그 즉흥연주는 너무 경이로워 듣는 사람들 모두가 놀라움과 감탄으로 떨렸다. 스타이벨트는 패배감과 굴욕감이 아닌 그 천재성에 낙담하여 경연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올리비아는 이 이야기에 대해 리스의 책이 출판되기 이전인 1829년 8월 파리의 기사라고 정확한 출처를 밝혔다.

 또 한 가지 1836년에 실린 기사에서도 베토벤의 즉흥연주에 대해서 요청에 의한 연주라고 언급했다. 베토벤은 이때 사용했던 스타이벨트의 프레이즈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발전시켰고 베토벤 영웅 교향곡 피날레의 주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 기사의 이야기라면 베토벤은 화나서 즉흥연주를 하거나 무시하듯 연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타이벨트가 정말 사기꾼 음악가였을까? 억울한 부분도 있는 듯 하지만 부정적인 음악적인 이슈가 있는 만큼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하지만 스타이벨트나 베토벤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남겨진 자료로 추측할 수밖에 없는 만큼 너무 사기꾼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겠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 사람에 대해서 단정 짓기보다는 잊힌 음악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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