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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Jun 14. 2022

마음에 들어서 아름다운가, 아름다워서 마음에 드는가?

아우구스티누스가 인식한 미와 예술

아우구스티누스 (354~430)

 지난 중세의 미학 글에서 비례의 미학 대표자로 등장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이하 어거스틴). 그는 오늘날 리비아에 해당하는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지방의 타카스테에서 태어났다. 어거스틴은 서구의 천 년을 관통하는 중세철학의 시대를 열었다. '어거스틴 이후의 서구 철학은 그의 테두리를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할 만큼 그는 서구 사상사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인물이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에 빠져 방황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했는데, 젊은 시절 방황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회의 이론적 수호자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다듬어나가기 위해 플로티누스의 철학을 도구로 삼았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내 말을 수긍하지 못하고, 이것들이 진실인지 의심스럽다면, 그대가 이것에 관해 의심한다는 사실을 의심하는지 생각해보라. 만약 그대가 의심하고 있음이 확실하거든, 이 확실성이 어디서 오는지 질문하라. - [참된 종교에 관하여(De vera religione)]

또한 어거스틴에게 인간 의식은 하나의 거대한 기적이자 심연이었다. 진리와 신(진리의 원천)마저 그 안에 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그대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라. 인간 내면에 진리는 살고 있나니. 또한 그대의 본성이 가변적임을 발견하거든, 그대는 자신마저 초월하라. - 같은 책

여전히 미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존재하지 않던 시기였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미학 연구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어거스틴의 미학적 견해들은 그의 방대한 저술들에서 산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학이 없다는 이야기를 매번 반복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오독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파편과도 같은 그의 견해들을 개인이 하나로 체계화해서는 안 된다.


어거스틴이 바라본 객관적인 특성이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먼저 이것을 묻겠다 : 그것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아름다운가, 아니면 아름답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가? 아름답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는 것이라는 대답이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

어거스틴에게 미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바로 조화(harmonia)이다. 그는 부분들이 적절한 비례를 따라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으면 전체 역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왜 아름다운가? 상대방이 주저하면 내가 나서서, 부분들이 대칭을 이루기에, 그 부분들이 어떤 배합에 의해서 하나의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넌지시 일러 주겠다.

아름다움은 개별적인 부분이 아니라, 부분들의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 관계가 적당할 때 조화, 질서, 통일성이 산출된다. 이것이 미가 결정되는 세 가지 요소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에서는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 하나에 의해서 모든 사물이 아름답고 온전한 것이 된다. 또 조화는 균형과 통일을 요구한다. 균형과 통일은 대칭된 부분들의 상합, 혹은 상이한 부분들의 연계적 배열로 달성된다.


어거스틴은 중세철학의 시대를 열었지만, 미와 예술에 대한 인식만 놓고 보면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이론들이 적절히 조화된 것 이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는 최고의 선함이자 최고의 아름다운 신을 목표로 했고, 그의 사상은 신에게로 육박하는 길고 신비로운 과정이다. 이 신비의 탐구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목적지가 바로 인간의 심연이다. 그가 부분적으로 언급한 미학적 견해들 역시 이러한 내적 여정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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