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와 미학
데카르트와 미학의 조화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미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예술을 다른 기술들과 구분하고 있지 않다. 즉, 예술을 먼 옛날 고대 '테크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학 카테고리에서 데카르트의 미적 성찰을 언급하고 싶은 이유는, 그의 포괄적인 지각이론이 현대 철학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
-비트켄슈타인-
데카르트에게 미적 지각은 '말할 수 없는 것'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드러나고 있지만 우리에게 해명되지 않는 것이다. 곧 '말할 수 없는 것'의 미학적 의미는 현대철학의 화두가 되었다. 비트켄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라고 말했지만,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저서 [음악 소론(Compendium musicae)]에서 미를 즐거움과 연관시켰다. 그는 감각적 지각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즐거움은 지각 대상과 감각 사이에 적절한 비율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상이 너무 쉽게 지각되어서도 안 되고 너무 어렵게 지각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미와 즐거움은 대상과 우리 판단의 관계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판단은 아주 다양해서 우리는 미와 즐거움이 어떤 특정한 척도를 갖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 미의 근거를 묻는 메르센 신부의 질문에 대한 대답
그는 미와 즐거움이 특정한 비율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 이유를 이성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이성은 인간의 감각적 지각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데카르트는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자연의 설립'이라는 관념에 의지한다. 우리는 자연이 특정한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법칙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단지 따를 뿐이고 이해할 수 없다. 인식 대상과 지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자연적인 과정의 산물이지만,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과학적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신학적, 형이상학적 영역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말할 수 없는 것'은 더 나아가 신적인 의미를 가진다. 신의 무한성은 유한한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이해는 특히 낭만주의에서 나타나게 된다. 낭만주의에서는 예술은 이상(이데아)을 유한적인 예술작품에 하강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상과 현실을 매개하는 예술가는 특권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영역은 현대철학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탐험되고 있으며, 예술이 이 영역의 의미에 대한 탐험에서 특권으로 간주된다. 그의 예술이론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형이상학적이고 미학적인 영역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그의 철학은 현대 철학, 미학적 사유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