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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Jun 21. 2022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게 한 장본인, 데카르트

데카르트와 미학

르네 데카르트 (1596~1650), 프랑스

 데카르트와 미학의 조화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있다. 그는 자신의 미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예술을 다른 기술들과 구분하고 있지 않다. , 예술을  옛날 고대 '테크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학 카테고리에서 데카르트의 미적 성찰을 언급하고 싶은 이유는, 그의 포괄적인 지각이론이 현대 철학 연구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
-비트켄슈타인-

 데카르트에게 미적 지각은 '말할  없는 ' 영역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드러나고 있지만 우리에게 해명되지 않는 것이다.  '말할  없는 ' 미학적 의미는 현대철학의 화두가 되었다. 비트켄슈타인은 말할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라고 말했지만,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말할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저서 [음악 소론(Compendium musicae)]에서 미를 즐거움과 연관시켰다. 그는 감각적 지각은 즐거움을 느낄  있는데,  즐거움은 지각 대상과 감각 사이에 적절한 비율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상이 너무 쉽게 지각되어서도  되고 너무 어렵게 지각되어서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미와 즐거움은 대상과 우리 판단의 관계 이상의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판단은 아주 다양해서 우리는 미와 즐거움이 어떤 특정한 척도를 갖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 미의 근거를 묻는 메르센 신부의 질문에 대한 대답

그는 미와 즐거움이 특정한 비율에 근거하고 있지만  이유를 이성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성은 인간의 감각적 지각을 완전하게 이해할  없다.

 데카르트는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없는 관계' 설명하기 위해 '자연의 설립'이라는 관념에 의지한다. 우리는 자연이 특정한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법칙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단지 따를 이고 이해할  없다. 인식 대상과 지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자연적인 과정의 산물이지만, 우리는 이해할  없다.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과학적 언어로 표현할  없고, 이성으로 파악할  없는 신학적, 형이상학적 영역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말할  없는 '이다.

 데카르트의 '말할  없는 '  나아가 신적인 의미를 가진다. 신의 무한성은 유한한 인간이 인식할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이해는 특히 낭만주의에서 나타나게 된다. 낭만주의에서는 예술은 이상(이데아) 유한적인 예술작품에 하강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상과 현실을 매개하는 예술가는 특권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영역 현대철학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탐험되고 으며, 예술이  영역의 의미에 대한 탐험에서 특권으로 간주된다. 그의 예술이론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형이상학적이고 미학적인 영역의 존재를 확인하게  그의 철학은 현대 철학, 미학적 사유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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