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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Jun 28. 2022

현대는 예술에게서, 예술가에게서 신성을 박탈하였다.

프랑스 현대 예술철학

 데카르트에 의하면 '말할 수 없는 것', 즉 신의 무한성은 유한한 인간에 의해 인식이 불가능하다. 후에 말할 수 없는 것은 현대철학의 화두가 되었고, 이 것을 말하려면 무한성의 의미를 이해하고 무한과 유한의 관계를 해명해야 했다.

 무한과 유한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낭만주의에서 나타났다. 낭만주의는 현실이 아닌 어딘가에 있는 이데아를 바라보았던 사조로, 그때의 예술은 이상(혹은 이데아, 궁극, 무한) 묘사하는 것이었다. 이상으로서의 무한이 유한한 예술작품으로 하강하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잠시나마 궁극을 맛볼  있었던 것이다. 궁극을 묘사한 예술작품은 신성한 것이었고 동시에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예술가의 지위는 높아졌다. 예술가는 이상과 현실을 매개하는 자이고, 선지자였다.


 현대 예술은 낭만주의와는 다른 무한과 유한의 관계를 제시한다. 이제는 예술이 이상의 구현으로 생각되지 않았고 예술작품은 더 이상 신성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예술가의 높아졌던 지위가 다시 하락했음을 뜻한다.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블랑쇼에게 무한은 절대적인 바깥이었다. 그리고 바깥은 곧 타인이었다. 즉 그에게 무한과 유한의 관계는 '나와 타인의 관계'로 이어진다. 타자와의 관계, 즉 공동체는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근원적으로 요청된다. 우리는 이미 타자와 묶여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처럼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이지만 귀속되지 않는 소통의 관계는 그의 소설 [최후의 인간]에서 엿볼 수 있다.

 소설에는 죽어가는 '그'와 그를 돌봐주는 '그녀', 그리고 소설의 화자이자 병원에서 그와 그녀를 지켜보는 '나'가 등장한다. '나'는 죽어가는 '그'를 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나'는 '그'와 직접 대면할 때 보다 '그'가 죽어가는 흔적에서 '그'의 존재를 더 생생하게 느낀다. 이때 '나'와 '그'는 죽음을 공유할 수 없다. 하지만 죽음에 마주하며 소통한다. 그들은 '바깥'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바깥과의 마주침은 유한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경험이다. 따라서 둘은 유한성 속에서 만나고 소통하고 있다. 결국 공동체(무한과 유한의 관계)의 토대는 '유한성'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블랑쇼는 낭만주의적 이상에 반대하고 있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

소설가, 극작가, 철학가, 수학자, 정치 활동가인 프랑스의 알랭 바디우. 그 역시 무한과 유한에 대해서 낭만주의에서 벗어난 사고를 찾아내고 있다. 바디우에 따르면 현대 예술은 무한이 유한 그 자체인 것처럼 만들고 있다. 이때 유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유한성이 아니라 무한이 산출되는 행위, 즉 '행위로써의 유한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상으로서의 무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은 유한의 특정한 형식으로서만 존재한다. 무한 자체로서의 유한한 형식이 바로 현대 예술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 예술은 이상으로서의 무한을 사건의 행위 속(유한)으로 해체시킨다. 예술이 더 이상 무한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진리 자체를 생산하는 영역이 된 것이다. 그리고 바디우에 따르면, 예술이 보여주는 진리의 생산 절차를 증거 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다. 하지만 철학은 예술에게 그 속에서 어떤 진리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진리를 말해주는 역할을 자임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의 미학은 종말을 고했다. 예술은 스스로가 진리를 생산하고 있고, 그것을 스스로 말하고 있다.

현대는 예술에게서, 그리고 예술가에게서 신성(la divinité)을 박탈하였다 .... 일상적 삶은 예술적 창조의 환경이며 동시에 일상적 감수성들과 지각들의 변화의 장이기도 하다. 예술은 삶 그 자체와 함께 감성을 분유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술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종종 실패한 혁명과 함께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제 현대 예술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상업적 감수성이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에, 그 감수성을 분유 하고 있는 현대 예술은 여전히 정치적인가?
-미학대계 제1권 [미학의 역사], <데카르트와 프랑스 현대 예술철학 - 박기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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