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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Jul 07. 2022

로파이(lo-fi)는 어떻게 집중의 대명사가 되었나.

로파이 음악

(사진 : 그라머폰의 옛 광고)

꽤 오래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lo-fi playlist'라는 것이 등장했다. 제목에는 대부분 '집중할 때, 코딩할 때, 공부할 때'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뜬금없이 내 알고리즘에 등장한 'lo-fi'라는 단어에 의문이 들었다.

로피가 뭐지?

우습게도 정말 '로피'인 줄 알았다. 새로운 영상을 접하게 되면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영상도 알고리즘에 함께 걸리기 마련인데, '로피'를 설명해주는 영상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찾는 수고를 거칠 만큼 흥미로운 요소는 아니어서 '코딩이랑 관련되어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로피'음악을 재생해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었다. 동시에 '로파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무의식 중에 배워놓기까지 했다. 어느순간 나와 가까워진 로파이 음악에 다시한번 궁금증이 머리를 내밀었다. 로파이의 뜻이 너무 궁금해졌다.


녹음기술이 처음 개발되었던 당시 녹음된 소리는 잔뜩 찌그러져있는 소리였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연구자들은 인간에게 생생하게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거쳤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연구를 통해 많은 발전을 가져온 발명가와 사업가들은 그라모폰, 빅트롤라 등 각자의 이름을 걸고 당대 최고의 음악을 담은 음반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판매자들은 음반에 있는 소리가 사람에 의한 '진짜' 음악이고, 공연장에 갈 필요도 없을 만큼 생생한 음악 경험이 가능할 것처럼 말했다. '녹음된 소리를 재생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넘어선 홍보였다. "자연스러운", "진짜" 같은 문구를 사용한 광고는 녹음된 음악이 원본과 동일하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더해서 음반은 기본적으로 완벽한 상태를 지향한다.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여러 번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황은 원본이었고, 음반은 사본이었다. 그리고 음반은 사본으로서 이 실황을 투명하게 전달해야만 했고, 그것이 목표였다.


이 목표는 '충실도'(fidelity)라는 개념으로 수렴되었다. 원본과 음반이 얼마나 같은지 측정하는 것이다. 녹음이 잘 되어 원본에 충실한 음반은 고충실도(high-fidelity) 혹은 하이파이(hi-fi)라고 한다. 하이파이를 향해 간다는 것은 높은 음역의 주파수를 담아낸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그리고 노이즈가 많이 생겨 지지직거리는 음반은 저충실도(low-fidelity) 혹은 로파이(lo-fi)라고 불린다. 이때 하이파이 음반을 위해 중요한 것은 노이즈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실황을 완벽하게 담아낸 충실한 음원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이파이 음반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간 결과가 바로 현재의 음원일 것이다. 하지만 집중을 위해 음악을 찾을 때는 높은 음질의 연주가 아니라 폭포 소리, 장작 소리, 백색소음 등을 찾게 된다. 집중을 위해 고음질의 음원을 듣고 있다가 되려 음악에 집중을 뺏긴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나는 직업병의 일종인지, 고음질로 녹음된 연주를 들으면서 편안하게 쉴 수 없다. 내 귀는 각 악기들을 해체하려 들고, 내 머리는 음악을 분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머릿속으로는 베이스라인을 따라 그림을 그리고 있고 아까 나온 멜로디가 다른 악기에서 나오고 있다며 악보를 상상하고 있다. 나는 집중을 위해서 이어폰이 아니라 귀마개를 끼고 고요속의 잡생각과 싸워야 했다.


어느새 로파이 음악은 귀마개의 정적 대신 음악과 함께 집중할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아날로그적 감성에 매력을 느껴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가 자주 듣는 로파이 음악은 위의 설명과는 다르게 '불편한 노이즈 덩어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편안하게 다가온다. 로파이 음악은 이러한 편안함을 위해 '의도적'으로 잡음을 만들어내고, 듣는 사람의 집중을 훔치는 고음역대를 잘라내기도 한다. 이런 작업들이 마치 백색소음처럼 청자에게 편안함과 집중력 가져다주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 즈음 등장했던 로파이 음악과도 많이 다르다. 당시의 로파이 음악은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녹음한 로파이였다고 한다면, 지금의 로파이 음악은 마치 하나의 특수기법처럼 노이즈가 사용되는 느낌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로파이 음악만 재생하는 채널도 있고, 이런 음악만 취급하는 전문 어플도 있다. 이처럼 로파이 음악의 수요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회적 배경에서 이어진 필연이 아닐까. 귀에 꽂히는 주파수를 삭제하고 노이즈를 섞어 어느하나 튀지 않게 만든 음악이 마치 '호캉스'나 '집콕'처럼 정신의 휴식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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