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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Jul 12. 2022

섀프츠베리는 취미론자인가?

영국 취미론 (1) - 섀프츠베리

'섀프츠베리(샤프츠베리)'라는 이름은 백작가 가문 이름이다. 현재는 12대 섀프츠베리 백작님이 가문을 담당하고 계시는데, 오늘 알아본 섀프츠베리는 3대 백작님이신 앤서니 애슐리-쿠퍼(Anthony Ashley-Cooper)이다. 

제3대 섀프츠베리 백작 앤서니 애슐리 쿠퍼(1671~1713)

'섀프츠베리는 취미론자인가?'라는 질문에는 '타당하지 않다'라는 대답이 옳다. 영국 경험론의 토대였던 유명론과 입자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취미론의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영국 취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어떤 이론이 큰 영향을 주었는지 두 가지 갈래로 알아보도록 하자. 


합리적 신비주의

취미론이 등장한 때는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하던 과학혁명의 시대였다. 예전과는 다르게 작디작은 입자들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즉 맛, 색깔 등 질적인 것은 자연이 아니라 관측자 쪽에서 일어나는 일(미세한 개별자들의 배열 및 결합 방식에 의해)이라는 게 증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입자 철학인데, 섀프츠베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섀프츠베리와 플라톤주의자들이 취한 방식은 형상(마음속에 떠오르는 대상)을 물질과 별개의 실체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기계론적 철학이 등장했던 시대에 왜 이데아를 동경하던 신플라톤주의가 등장했을까. 그들은 과학과 종교를 조화하고자 했다. 입자 철학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고, 물질적인 인과관계가 어떤 비물질적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성(합리)에 대해 옹호하고, 어떤 면에서는 신비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이 시대 영국 신플라톤주의자들이다. 1911년 즈음 이들이 플로티누스에게서 이끌어내고자 했던 것이 "합리주의적 신비주의(rational mysticism)"라고도 칭해지기 시작했다. 


무관심성

섀프츠베리는 물질적 운동이 비물질적인 영혼에 의한다고 간주했지만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는 믿지 않았다. 섀프츠베리에게 열광(enthusiasm)은 자연 자체에 대한 열광이다. 존재 그 자체의 위대함에 대한 열광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점에서 종교의 본성을 신에 대한 무관심적 사랑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무관심'이란 자기 이익적 동기로부터 유발되지 않는다는 뜻의 무관심이다. 우리는 흔히 신을 믿을 때 무언가를 바라며 기도하곤 하는데 섀프츠베리에게 그런 종교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신 자체에 대한 강한 몰두, 신 그 자체 혹은 신의 내재적 가치에 몰두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열광'이다. 


열광은 자신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월한 것에 대한 심상을 가질 때 일어나는 강렬한 감정이다. 자연 전체는 신이 육화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은 예술작품으로 간주된다.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시인은 존재론적으로 더 우월한 것에 대한 통찰을 지녀야 한다. 인간이 인간이도록 하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열광인 것이다. 자연과 예술작품은 우월한 존재에 닿는 수단으로 간주되고, 이러한 존재론적 상승을 가능하도록 하는 데에 무관심성의 본질이 있다. 



취미론의 성립과 관련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가 철학은 생각하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실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섀프츠베리의 철학적 관심은 인간의 태도와 습관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취미의 원리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후 취미론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켰던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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