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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Oct 18. 2022

예술작품의 진리는 해석자의 지평에 의해 변화한다.

가다머의 예술철학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90 ~ 2002) 독일

‘가다머’ 하면 ‘해석학’이 떠오른다. 이때의 해석학은 수학의 해석학이 아닌 철학적 해석학을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석하는 것일까? 철학 해석학의 시작은 성경 텍스트나 철학 텍스트를 해석하는 이론이자 방법론이었다. 이때의 전통적인 해석학은 텍스트의 의미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한 텍스트의 의미는 저자의 의도에 의해 결정된다 - 히쉬(E.D. Hirsch)

하지만 가다머는 텍스트의 의미가 저자를 넘어 독자의 지평과 저자의 지평이 만나는 지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현대 해석학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형식, 기호학 등 해석하는 과정에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가다머의 해석학

하이데거에게 ‘존재와 시간’을 직접 사사한 가다머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큰 변화 없이 받아들였다. 가다머에게도 ‘존재’가 중요했다는 뜻이다. 가다머에게 인간 존재는 시간적이고 역사적이다. 인간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지평 속에서만 미래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사태를 이해한다’는 것도 자신의 역사성을 의식하면서 자신 안에서 역사적 현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때 역사성을 의식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이해할 때 선입견으로 작용한다. 가다머의 해석학은 이 선입견을 이해의 중심에 놓는다. 


-어떠한 글을 읽게 된다- 라는 해석학적 상황 속에는 ‘글을 쓸 당시의 지평’과 ‘독자가 글을 읽고 있는 현재 지평’ 사이에 간격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글을 읽는 해석자가 이 간격에 직면하게 되면 글에게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 하지만 더 깊은 의미에서는 글 자체가 계속 변화하는 해석자에게 물음을 제기한다. 각자의 지평 사이의 텅 빈 듯한 그 공간을 서로가 경청하며 새로운 지평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간격은 텅 빈 것이 아니라 과거 지평과 현재 지평을 아우르는 '존재의 연속성'에 의해 채워져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즉 진정한 이해는 텍스트와 해석자 각각의 지평 융합으로 경험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과거의 지평은 현재 지평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면서 텍스트와 해석자 양쪽에게 변화를 준다. 가다머는 이 경험을 "영향작용사적 의식(Wikungsgeschichliche Bewusstsein)"이라고 칭했다. 


가다머의 예술철학

가다머에게 예술작품은 작가가 언어를 통해 표현한 텍스트이다. 예술작품은 텍스트로 자신의 존재진리를 드러내고, 해석자가 작품의 세계에 참여하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다. 때문에 가다머는 모든 예술작품이 이해를 요구하는 텍스트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해석학적 입장이 그대로 예술철학으로 연결되어있고, 작품 감상의 측면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주관적인 생각의 다양성이 아니라 작품의 관점의 다양성 속에서 해명되는 작품의 고유한 존재 가능성인 것이다. - 가다머

그에 의하면 한 예술작품이 지니는 진리는 다의적이다. 하나의 예술작품은 궁극적인 해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지평에 의해 해석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을 접하는 자는 그 만남을 통해 변화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잃는 것은 아니다. 두 세계와의 융합 속에서 자기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예술작품을 단순한 유물로 취급하지 않고 전적으로 참여하고 있듯이 말이다. 

유희(Spiel)

가다머에 의하면 예술작품은 열려있다. 그는 이러한 예술 작품의 존재방식을 "유희"로서 파악했다. 유희는 가다머의 예술철학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인데, 존재의 유희적 운동은 그 운동을 끝내려는 어떠한 목적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는 해석의 순환 속에서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새롭게 할 뿐이다. 예술을 해석한다는 것은 존재의 유희(끊임없는 해석의 순환)가 표현하는 것을 자신의 지평과 결합하여 재창조하는 것이다. 관객은 '거기에 있음'으로써 사태 자체로 향한다. 그것이 예술적 유희에 머무르는 관객의 진정한 존재방식인 것이다. 존재의 유희는 유희를 바라보는 관객 안에서 비로소 완전한 의미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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