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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Dec 06. 2022

한국 고대의 미학사상

신화를 바탕으로

단군왕검 - 채용신(조선후기 화가)이 그린 단군상

어린이들이 '우리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라는 질문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주아주 옛날에~'라고 시작하며 단군신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의 경험, 역사성, 시간성을 분리할 수 없듯이 한국인의 삶의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발점인 신화나 설화를 무시할 수 없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 문화의 시작이자 근원이기에, 이를 시작으로 여러 신화들의 질서를 검토해 가며 태초 한국인들의 사상을 살펴보려고 한다.


아침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생각해낸 나라 이름은 '조선朝鮮'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 명칭은 '동방의 태양이 떠오르는 곳'에서 유래한다. 태양이 솟아오르는 동방의 '선명한 아침'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거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조선과 미국의 외교에도 관계했던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은 1866년 자신의 저서에서 조선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아침은 밤과 낮의 중간 지대요, 밤의 어둠과 그 음陰, 그리고 낮의 밝음과 그 양陽이 다 함께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조용히' 공존하는 분위기가 바로 아침이다. - 김형효 [한국사상산고]

즉, 아침은 낮의 법칙과 밤의 정열이 음양의 태극적 원형을 이루는 균형의 상태인 것이다.


 한국의 고대 신화에서 빛은 항상 주인공의 탄생을 예고해 주고 주인공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단군신화에서는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백일동안 빛을 보지 않아야지만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빛은 암울한 고행의 과정을 거쳐 곰으로부터 변신한 인간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고, 동시에 새롭게 시작되는 세계의 열림을 의미한다.

 주몽신화에서도 빛이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를 계속 따라다녔고, 혁거세 신화에서도 우물가에 번개빛처럼 이상한 기운이 비치고 있었다. 이처럼 우리민족의 거의 모든 건국신화에는 빛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백색(白色)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턱에 있는 신단수 밑으로 내려왔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태백산 이름에 나오는 '백白'자이다. 우리나라에는 유별나게 ‘백’자나 비슷한 소리를 가진 글자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당장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산 이름만 해도 태백산, 소백산, 백두산, 백암산 등인데, ’백‘자가 빠짐없이 들어간다.

 혁거세 신화에서도 흰 말이 등장하고, 김알지 신화에서도 흰 닭이 등장한다. 이처럼 고대 한국의 신화 가운데 색으로서의 백은 근원상징으로서의 성격을 아주 강하게 띠고 있다. 백은 현대에 있어서도 근원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색이다. "백의민족". 많은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낄 이 단어로 설명을 대신한다.


조화(調和)

단군신화에서 단군은 하늘(환웅)과 땅(웅녀)의 조화로 탄생한 인간이다. 단군의 존재, 그가 거처하는 세계 자체가 천天-지地-인人 조화의 세계인 것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천지인의 합일로 우주론적 조화사상을 근원적으로 체험했다. 그것이 가장 온전한 감정상태이며, 우리의 최초의 경험에는 하늘과 땅의 대립이나 갈등이 없다. 이렇게 고차적인 미적 형식원리의 조화사상은 곧 한국인의 윤리와 예술의 기반이 된다.


난형(卵形)

 우리의 탄생신화에는 알에서 태어난 영웅들이 참 많다. 주몽도, 혁거세도, 김수로왕도 그러했다. 난형은 존재의 비밀이 담겨진 근원적인 형태이며 특수한 미적 매력을 맛보게 한다. 이렇듯 둥근 알이라는 형태는 우리민족의 미의식의 기반을 밝히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원 가운데서도 가장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난형은, 기하학적인 동심원이나 타원형과도 다른 독특함을 가진다. 자연이 낳은 형태이며 생명성을 지닌 유기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난형과 가장 닮은 식물은 박이다. 한국인은 바가지와 같이 평범하고 단순한 인공적이지 않은 둥근 형태를 선호한다.

바가지의 모양처럼 수수하고 둥글넓적하고 약간 일그러진 그 타원형의 형태를 우리는 사랑한다. 움푹하면서도 갸름한 손잡이, 단정하되 약간 균형이 어긋난 자연스러운 볼륨. 아무데를 보아도 요철이 없고 신경질적으로 모난 데가 없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그러면서도 은근한 변화가 있는 바가지의 모양이야말로 한국적 미의 원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이어령

이렇게 볼 때 한국적인 형태미는 공간을 침투하고 정복하는 미가 아니라 공간속에 스스로 동화하려는 순응의 미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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