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도르노 Jan 31. 2023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한대 미학사상

한(漢)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한대는 한 문화의 정체성을 수립함과 동시에 이후 위진남북조 시기에 예술론이 본격적으로 정립할 수 있게 해 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이다. 이번 글에서는 한대에 논의된 미적 사상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려 한다. 


회남왕 유안(B.C. 179 ~ B.C. 122)(왼), 회남자(오) 출처 : 위키백과

유안의 [회남자(子)]

회남왕 유안(淮南王 劉安)이 저술한 책이다. 한나라 초기 사상을 대표한다고 평가된다. [회남자]의 논의는 작품에 도를 구현하려는 중국 예술론의 근간이 되었고, 위진남북조 시기 인간관과 예술론에 영향을 주었다. 

미의 상대성과 절대성

[회남자]에서는 '맛있음' 혹은 '즐거움'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움'에도 다양한 미적 현상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완벽히 아름다운 사물은 없으며, 같은 사물이 상황에 따라 아름다워 보이기도 혹은 추해보이기도 한다는 점도 지적한다. 결국 절대적인 최고의 아름다움은 다양함이 없는 무형일 때 가능하다. 이상적인 미적판단은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의 소재는 판단하는 주체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남자]는 만족을 줄 수 있는 이상적인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이상적인 인격을 추구한다. 이러한 인격의 이상이 바로 '성인'이다. 

군형론(君形論)

[회남자]는 신神, 형形, 기氣의 관계를 제시했다. 형은 생명의 외피이며, 기는 생명을 채운 것이고, 신은 생명을 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모든 가치 판단은 이 세 개념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세 개념은 서로 영향을 미치지만 이중에서도 신이 주체로 기능하고 신이 형과 기에 의해 어그러지지 않아야 생명체는 온전히 유지될 수 있다. [회남자]는 회화에서도 신, 형, 기의 이상적 관계를 적용한다. 잘 그려진 인물화는 외모만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인물 각각의 독특한 생명력을 표현한 작품이다. 생명력을 표현하려면 신을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 올바른 감상 역시 올바른 신과 형, 기의 관계에서 가능하다. 이 세 개념의 관계는 중국 회화와 문예 미학에서 중요한 범주가 되었다.


동중서(董仲舒 B.C. 176(?)~B.C.104)

동중서의 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

천인감응론에 의하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위의 아름다움이 서로 상응하는 구조를 가진다. [회남자]와 달리 음양오행에 강력한 영향을 받은 천인동구론과 감응론은 이후 중국 미학에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진다. 

비덕(比德)설의 강화

비덕설이란 인간과 자연의 속성을 비교하는 어법이다. "산이 높이 솟아 있고 시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어질고 뜻이 있는 선비와 같다." 그의 비덕설은 자연과 인간을 문학적으로 비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동질성을 사상적으로 확신시켰다는 의의를 가진다. 동중서의 비덕설은 중국 문예의 큰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강화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영향을 준다. 인간이 올바른 행위를 함으로써 자연의 아름다움이 성립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예술 창작론에서 자연이 작가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작가는 반대로 자연의 정취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으로 발전된다.

예술창작상의 구체적인 규칙들에 직접 영향

동중서는 건축에서 면적과 높이의 설정, 서로 다른 악기 간의 음정 조율을 자연과의 동구론과 감응론으로 설명했다.

예술과 자연뿐만 아니라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강령 제시

동중서는 예악이 통치자의 공덕을 칭송하고 백성을 교화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유향(劉向, B.C. 77 ~ B.C. 6)

유향의 문질론

문질(文質) : 중국의 문학 비평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말로, 문장과 본질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문학 개념

고문학파의 선구자인 유향은 유가의 문질빈빈의 전통을 계승하고 음악에 관해 순자의 악론과 악기를 이어받았다. (문질빈빈 : 외견이 좋고 내용이 충실하여 잘 조화를 이룬 상태) 그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논했다. 예禮는 제도적으로 언행을 규제하는 기능을 하고, 악樂은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도덕과 질서에 복종하게 하는 기능을 가진다. 유향은 여기에 문장의 수식(꾸밈)을 강조했다. 문장을 꾸미지 않으면 질이 상할 수 있다고 하며 문의 영향력을 강화시켰다. 


양웅(楊雄, B.C. 53 ~ B.C.18)

양웅의 미론과 문질론

미론

양웅의 최종적 목표는 무를 통해 올바른 유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언어를 불신했지만 양웅은 언어의 의사소통 능력을 신뢰한다. 특히 그는 감정을 중요한 표현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마음에 대한 표현 능력을 인정했다. 이렇게 유로 드러나는 언어에 대한 신뢰와 정에 대한 주목은 그동안에는 없었던 한대의 특징이다. 

문질론

양웅은 음악, 문학, 의복, 언어를 포함한 모든 문화 현상이 반드시 올바르고 치우치지 않은 바탕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때 올바르고 치우치지 않은 바탕이란 사실성과 도덕성이 자연의 조화에 충실하고 균형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또한 올바른 수식은 문화 수준의 지표가 되기 때문에 올바르고 치우치지 않은 바탕이 반드시 수식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강조했다. 


왕충(王充, 27 - ?)의 [논형論衡]
[논형]은 미론을 상세히 설명하고 세속의 의혹을 해석했으며 시비의 이치를 판정했고, 실제에 근거해서 허망한 말을 꾸짖었다. 

왕충의 예악론과 문질론

진과 인위의 합일

[논형]에 의하면 자연은 의지 없이 운행한다. 즉 기를 베풀어 만물을 낳아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으므로 무위이다. 따라서 자연이 인간의 잘못을 꾸짖는다고 보는 모든 행위는 자연에 대한 올바른 입장이 아니다. 왕충은 무위자연을 사회에 실현시키고자 했고 무위와 유위, 자연과 사회를 합치시키는 도구로서 문화와 그것을 만든 인간의 능력을 신뢰했다. 그리고 예와 악은 인간의 성정을 바탕으로 본성을 실현하는 데 자연을 벗어나지 않도록 절제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문질론

왕충은 단순한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기록보다는 사려를 갖춘 글을 중시했다. 그리고 그 사려를 갖춘 문장은 진실한 정을 드러내고 거짓 혹은 공허함을 떠나야 한다. 그래야 보는 이가 올바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왕충은 문장의 내용을 중요한 창작 기준으로 논하면서도 형식상의 아름다움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문과 질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문과 질의 겸비가 문화적 차원을 넘어 '자연'의 이치에 합치한다고 논증하는 부분은 사회적 윤리에 근거해 문질론을 전개한 유향, 양웅과 대비된다. 


한대의 서예론

서예가 예술로서 논해지는 것은 중국 예술론의 독특한 현상이다. 서예와 회화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묵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점과 표현방법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서화동원론과 서화동필론이 주장된다.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 서화동필론(書畵同筆論) : 그림과 글씨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회화의 일차적 목표가 대상의 형태를 모방하는 것이라면, 서예의 일차적 목표는 글자의 형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작가의 사고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 대상과 방법에 큰 차이를 가지기 때문에 서예 고유의 특징은 후한대부터 모방과 표현의 관계 위에서 논해졌다. 이렇게 서예론은 악론과 문학론 이후 세 번째로 이론을 갖춘 장르가 되었다. 

한대의 서체

(사진 출처 : https://m.blog.naver.com/hmansik/220911547224)

한대에 들어 위의 사진과 같은 필법으로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드러내게 되었다. 특히 초서는 두드러진 예술성으로 서예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번져나감과 동시에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조일(趙壹) : 초서는 전통적이지 않으며, 단순한 간략함만을 편의에 따라 추구할 뿐이다. 

최원(崔瑗) : 초서는 급할 때 빠르게 쓰기 위한 사회적 효용성이 분명하니 반드시 해서와 같은 옛 글씨체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 최원은 다양한 자연의 현상을 연상시키는 초서의 필묵법을 생명감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채옹(蔡邕) : 작가는 심신을 고요히 하여 판단을 벗어나 본래의 성정을 따라야 한다.

초서에 대한 조일의 비판은 후한 말 서예가 새로운 미적 가치를 추구했다는 증거가 된다. 또한 최원이 서예의 예술미를 자연 현상에 비유했다면, 채옹은 작가의 측면을 주목하며 보다 논리적으로 창작과정을 서술하면서 서예론을 본격화시켰다. 


이렇게 한대에 있었던 다양한 논의들을 바탕으로 미학은 위진남북조 시기에 더 확대되고 체계적으로 논해지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단히 알아보는 한대 미학사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