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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도르노 Jun 13. 2023

뮤직(Music)의 시초

고대(2) - 그리스 피타고라스학파

무지케

고대그리스에는 예술을 ‘무지케’라고 불렀다. 뮤직의 어원인데, 신이라는 뜻을 가졌다. 정확히는 뮤즈 신(무사이)들을 칭한다. 뮤즈 신은 음악과 시를 관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이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지금의 뮤직은 음악만을 칭하지만, 당시의 무지케는 아홉의 신을 통칭하는 단어인 만큼 관련된 모든 예술들을 지칭했다. 그리스인들에게 음악은 여흥을 위한 예술이자 과학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일할 때도, 공부할 때도, 군대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음악은 그들의 삶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음악과 시를 관장하는 아홉 명의 여신
왼쪽부터: 멜포메네(비극), 에라토(독창), 에우테르페(서정시), 우라니아(천문), 칼리오페(서사시), 클레이오(역사), 탈리아(희극), 테르프시코레(합창, 가무) 폴리힘니아(찬가)

고대그리스는 기원전 1,100년경부터 기원전 146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메소포타미아(B.C. 5,000 ~ B.C. 600)보다 약간 후대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B.C. 550년경 그리스와 그리스 점령지를 빨간색으로 현대 지도에 표시해보았다.

위에 표시한 영역은 550년경 그리스 점령지이다. 굉장히 드문드문 퍼져있어 이동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렸겠다는 생각이 든다.(ㅋㅋ) 메소포타미아는 이미 없던 시기이지만 이해를 위해 대략적으로 함께 표시해 보았다. 고대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아무래도 ‘피타고라스’ 일 것이다. 모든 지식의 근원인 그는 그리스 전체 시기중 중간인 기원전 570년경에 태어났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피타고라스 이전에는 아무런 지식활동이 없었던 걸까?


그리스 암흑기

위에서 고대그리스의 시작은 1,100년 경이라고 언급했지만 사실 기원전 2,000년경에도 ‘미케네 문명’이라는 전성기가 있었다. 보통 이 시기를 ‘고대 그리스 청동기시대’라고 칭하는데 1,100년경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케네문명이 몰락했다. 수많은 도시들이 약탈되고 학살당한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후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 문헌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 이때를 ‘그리스 암흑기‘라고 칭한다. 음악 역시 이 암흑기를 피해 갈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이후의 시기부터 알 수 있었고, 그래서 피타고라스가 모든 지식의 시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대그리스의 음악

음악사에서 고대 그리스는 음악의 학문적 연구가 처음 시도되었다는 큰 이슈가 있었다. 피타고라스와 그 제자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시작으로 말이다. 그러면 피타고라스는 음악을 뭐라고 생각했을까?

음악은 수이다.

피타고라스학파에게 음악은 숫자였다. 왜? 음은 비율이기 때문이다. ‘도’ 소리가 나는 현의 1/2(2:1 비율) 지점을 누르고 울려보면 한 옥타브 높은 ‘도’ 소리가 난다. 3:2 비율은 5도(도-솔), 4:3 비율은 4도(도-파)이다. 이 얼마나 수학적인가? 심지어 리듬을 쪼갤 때도 두 박자, 세 박자.. 숫자를 사용한다. 음악은 수 그 자체인 것이다. 이게 피타고라스 학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실이었냐면, 이들에게 수는 우주의 핵심이었다. 그러니까 수=음악=우주, 음악은 곧 우주인 것이다!

음악은 우주이다.

수학 원리와 비율은 음정과 천체의 기초로 여겨졌다. 행성들 간의 거리, 행성의 움직임은 곧 수와 비율 그 자체이니 우주의 움직임이 음악의 음표, 음정, 음계와 같다고 믿어진 것이다. (음악인으로서 아주 뿌듯하다^^)

음악은 인간 영혼을 회복시킬 수 있다.

에토스(ETHOS): 개인의 윤리적 특성 또는 존재 및 행동의 방식

피타고라스학파는 인간 영혼이 수적 관계에 의해 조화를 유지하는 복합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인간 영혼에는 질서가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질서로 만들어지는 조화 그 자체인 음악은? 당연히 인간 영혼에 침투해서 내적 조화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음악은 우주인데 ^_^)


음악과 교육

피타고라스학파는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악이 교육에도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파트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인데, 재미있는 점은 둘의 교육관이 조금 달랐다는 것이다.

플라톤

플라톤(B.C. 428?~B.C.424?), 그리스 아테네

먼저 플라톤은 엄청 엄격했다. 그가 생각했을 때 교육에 적합한 음악은 따로 있었다. 음악이 너무 지나치면 사람을 나약하게 하기 때문에 오락을 위한 음악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음계까지 지정해 놓을 정도였다! 통치를 위해 교육받는 사람들은 부드러움과 나태함을 표현하는 음악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복잡한 음계나 장르, 리듬, 악기가 조화롭지 않게 혼합된 음악을 비판했다. 무질서한 음악은 사회의 무질서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 그리스 스타게이라(현 중앙마케도니아주 할키디키반도)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 비하면 엄격하지 않은 편이었다. 음악이 교육뿐만 아니라 오락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악이나 연극을 통해 감정을 환기시킬 수 있고 부정적인 감정이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진보를 위해서만 연주해야 했고, 타인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하는 것은 천하고 저속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의 음악은 지금처럼 향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필요성에 의해 쓰이는 도구적인 느낌이 강하다. 완벽한 비율 자체를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음악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수와 비율이 중요해서 음악이 포함된 듯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해 주었기에 학문적인 탐구를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시작으로 지금의 음악이 탄생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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