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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Apr 16. 2021

생경함과 익숙함, 그 사이 어디쯤

신입사원 적응기

어스름할 무렵 집을 나선다. 주차장에 놓인 차를 꺼내 시동을 걸고, 잔뜩 긴장한 상태로 익숙하지 않은 길을 나선다. 꽉 막히는 서울의 중심을 달려 사무실에 도착하면 매일 새로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익숙함과 생경함 사이

영업사원 교육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회사에 왔다. 학부 시절의 전공을 살려 직원들을 교육하는 직무에 배정되었다. 대학원에서 HRD를 전공하고 싶어 했었던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책이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익숙함 뒤에는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학부시절 교육학만을 탐구해왔던 내게 홈퍼니싱, 인테리어란 미지의 영역과도 같았다. 그런데 단순히 인테리어를 공부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판매할 사람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교육에 대한 자신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3월부터 시작된 나의 OJT(On The Job Training)는 익숙함과 생경함 사이 어디쯤에 있다. 교육의 렌즈로, OJT 과정을 조망하며 사람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익숙하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반복해 오던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테리어를 판매한다’는 것은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다.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제품에 대해 설명해야 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공간을 꾸려나갈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리모델링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입문자들을 어떻게 단기간에 전문가로 만들 것인지도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임시직 영업사원으로서의 첫 달에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근무표 상 휴무로 적혀 있었던 날에도 일했고 그것이 교육담당자를 꿈꾸는 사람이 지녀야 할 당연한 자세라고 여겼다.




3월의 삶
생일 날, 퇴근 이후의 풍경

낯간지러운 이야기지만 지난 3월 1개월 차 영업사원 치고는 과분한 실적을 세웠다. 우수 사례로 선정되어 영업사원들 앞에서 강의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한 성과를 낸 셈이었기에 스스로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하지만 계약을 한다는 것은 그에 따르는 고객 관리, 시공 현장 감리, 손익계산, 수금,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이후의 사후 대처를 모두 해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시공현장이 시작될수록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나는 그 모든 주문을 감당해 내기에는 너무나 미숙했고 그럴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렇게 점점 내 삶은 뒷전으로 밀렸다. 일이 최우선인, 일상이 없는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04.02 생일. 근무 한 달째.
햇살 좋은 날, 강이 보이는 카페에 나가서.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휴무 없이 근무한 지 꼬박 20일이 되던 날이었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


책 속의 이야기는 내 집 마련의 꿈이 사라진 시대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가를 다루고 있었다. 빠듯한 월급을 쪼개어 맛집에 간다거나, 유명한 카페에서 한참을 기다려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거나 하는 일들. 여유가 없는 한 달을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던 내게 그 이야기는 일종의 경고처럼 여겨졌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고 있었을까? 매일매일 퇴근 후에도 자진해서 잔업을 하며 스스로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지는 않았을까? 나는 영업사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나의 3월처럼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방법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도로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다. 아침 일찍 나가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꽃을 잠시 감상하거나 집에 들어가는 길에 어두워진 거리를 잠깐 보는 것. 그것만이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있는 작은 위안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




퇴근하는 길에 혼자서라도 예쁜 가게에 들려 맥주를 한 잔 하는 것. 혹은 유난히 맛있다는 카페에 가서 가장 좋아하는 스콘을 먹는 것. 그도 아니라면 조금 멀리 나가서 밤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오는 것.

그리고 가끔은 꽤 먼 곳으로 나가 예쁜 풍경을 눈에 담고 돌아오는 것.


그렇게 일과 삶 사이에서 조금씩 균형을 맞춰나가는 방법을 탐구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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