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EET 언어이해 강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판결문을 낭독하겠습니다'를 읽었다. 대체로 감정주의적 서술이 주류를 이루는 다른 책들과 달리, 실제 판결을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법리적 쟁점들과 사고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매우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로 읽는 텍스트들은 국어강사로서 일하며 읽게 되는 평가원 지문이나 LEET 언어이해 지문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에, 그러한 책들에서 '논리학'을 피상적으로 접하기는 했으나 실제 상황에서 논리학이 쓰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판사의 실무를 다룬 책을 보면서 논리학적 사고력이 왜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LEET(법학적성시험)에서 왜 '추리논증' 과목을 별도로 개설해 두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판사의 정의를 다룬 아래의 구절을 보면 이러한 맥락을 더욱 상세히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예전의 저는 단순히 '양심'을 악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헌법에서 말하는 양심은 선함이나 정의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주관적 가치판단에 따른 사물의 옳고 그름에 관한 내적 믿음’을 뜻합니다. 즉,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판사 자신의 옳고 그름에 관한 내적 믿음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만 판결할 수 없는 사건이 제법 많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률이 있고, 법률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한 수많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법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법리와 판례가 수십 년 동안 쌓여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리와 판례로도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법리와 판례를 눈앞에 있는 사건에 적용할지 결정하는 것부터 문제가 되고요.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완전히 똑같은 사건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원장이나 동료 판사, 선후배 법조인, 혹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양심이 아닌 재판을 하는 판사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내적 믿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결론을 내리고, 판사들마다 심급마다 판결이 달라집니다.
위 구절에서 추론해 볼 때, 판사는 다양한 판례를 해독하면서도 자신의 양심을 돌아보며 '옳은 판결'을 했는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AI 판사가 더욱 잘 판결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판사 무용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나 또한 짧은 식견으로 이런 생각에 동의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판결이란 그리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과거의 판례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의의 기준이 당도함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당장 20년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관행들이 현재에는 불합리한 일이 된 것처럼 사회의 기류를 읽어내는 일은 아직은 인간이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일부 분야에서는 법률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나은 능력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활용 영역이 넓어지리라는 점은 명확합니다. 알파로 경진 대회에서 우승한 법률 인공지능은 인텔리콘 메타 연구소의 임영익 변호사가 만든 것입니다. 그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법률 인공지능은 근로계약서 분석 기능만 놓고 보면 인간 변호사 수준에 육박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법률 인공지능이 변호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임영익 변호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중략)
Q. 판례가 축적되어 있지 않거나 새로운 유형의 사례는 어떻게 해결할까요?
→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럴싸하게 답을 내놓는다면 오히려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현혹과 과신은 이미 널리 존재하므로 앞으로도 그로 인한 판단 오류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대량살상 수학무기: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가 그러한 폐해를 묘사한 유명한 책이지요.
(중략)
판사 개인은 인공지능을 지도 학습시킬 돈과 시간이 없겠지요. 전자에 해당하는 경우는 특정 분야 내에서 나타날 가능성 있습니다. 예컨대 개인회생 등의 사건에서 ‘예 또는 아니요’로 답하는 이진법 결정(양자택일)에 도입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의 구절을 참고해 보면 '인공지능으로 판사를 대체하는 것은 어렵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나 또한 컴퓨터과학을 공부했던 입장에서 인공지능이 일부 영역에서 확실히 인간보다 나은 퍼포먼스를 보일 것이라는 결론에는 매우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법률 인공지능은 새로운 판결을 내리기 어렵고 판사 개개인의 판결 성향에 맞춘 AI를 만드는 것도 적어도 내가 활발히 사회생활을 하는 10~15년 내에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처럼 보인다.
법률가에게 논리학적 사고력이 필요한 이유를 집중적으로 논해보고자 한다. 내가 강의하려는 과목은 LEET '언어이해'이지만, 당연히 다른 과목 이해도 있어야 하기에 추리논증도 공부하고 있다. 추리논증 문항들은 상당히 모호해 보이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전후 관계를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나 같은 사람이 풀기에는 다소 어려운 문항들이다. 나는 그런 '탁월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판사의 실무를 이야기한 이 책을 읽으면서 상술했듯, 그런 과목이 왜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검사가 B에게 사기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검사는 B를 사기 혐의로 공소제기 합니다. 여기서 공소제기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약식재판이고 다른 하나는 정식재판입니다. 정식재판은 우리가 흔히 아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형사재판입니다. 이와 달리 약식재판은 법정에서 재판을 하지 않고 서류를 통해서 벌금 등을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무면허 운전, 음주 운전, 폭행과 같은 비교적 가벼운 범죄들에 대해서 벌금형으로 처벌하려는 경우 약식재판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이러한 범죄도 정도가 심하거나 자주 반복되면 정식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됩니다.
형사재판은 검사, 판사, 피고인 측 변호인의 세 주축이 각자의 논리로 싸우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과정이 일련의 잘 짜인 각본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오가는 용어들은 내가 해석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이었고 그냥 살인자라면 무기징역을 선고하면 될 걸, 뭐 하러 저렇게 격렬한 논쟁을 벌이나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참 잘못된 것이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내가 본 것은 기사 몇 줄에 적힌 자극적 사실이었다면 그 이면에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몰두하는 경찰, 검사 등이 있었다. 피고인은 기소되기 전까지 (혹은 기소된 이후에도) 자신의 범행을 부정할 수 있고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공권력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체제는 매우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함으로써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은 어떤 제도일까?
대학에 진학하던 2017년, 로스쿨이 막연하게 느껴져서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로스쿨'이라는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고 대학교 1학년이 되던 2017년에는 마지막 사법고시가 치러졌다. 그리고 이제 법조인이 되는 길은 '로스쿨' 한 가지로 한정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1학년 때부터 동기들 중 꽤나 많은 비중이 학점 관리에 몰두했다. 마치 고등학교 생활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았다. 학점을 퍼준다는 소위 꿀강의를 찾아다니면서 어떻게든 더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애쓰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일찌감치 그런 경쟁에서 비켜나 있었기에 비교적 평온하게 대학 생활을 보내기는 했으나, 항상 이 제도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이 뒤를 따라다녔다.
로스쿨이 도입된 것은 2009년입니다.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법학 교육의 정상화와 국가 우수 인력의 효율적 배분입니다. 먼저 법학 교육의 정상화는 기존의 사법시험 제도가 체계적인 법학 교육보다 시험 대비를 위한 ‘기술’ 습득에 치우치게 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과거 사법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생들은 대학에서 성실하게 수업을 듣기보다는 각종 고시 학원으로 몰렸습니다. 대학 수업은 실무에서 멀고 지나치게 학문적인 측면이 있었고, 교육 과정 또한 사법시험과는 동떨어져 학생들의 배움이 여러 방면에서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법학적성시험LEET을 보아야 하고, 어학 성적과 대학 학점이 필요합니다. 세 요소를 어떤 비율로 어떻게 반영할지는 각 대학 로스쿨에서 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원대, 경희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등은 영어 성적을 일정 점수를 기준으로 합격pass 또는 불합격fail으로 반영합니다. 대학 학점으로 로스쿨 응시자들의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법학적성시험입니다. 그 외에도 자기 소개서, 봉사활동, 자격증, 사회 경력 등이 반영되기도 하지만 비율은 미미합니다.
로스쿨별 서류 전형을 통해 정원의 3배수에서 5배수의 인원을 선발한 다음 면접을 봅니다. 2017년부터 전국의 로스쿨에서 블라인드 면접이 시행되어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출신 학교, 학점, 자기 소개서 등을 전혀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중략)
로스쿨 도입과 사법시험 폐지 이후 판사 임용 제도는 변호사 자격을 갖춘 뒤 일정 기간의 법조 경력을 쌓은 사람만이 판사가 되는 것으로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제도를 법조일원화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변호사나 검사로 일하다가 판사가 되기는 힘들었지만, 법조일원화에 따라 변호사나 검사 가운데 판사를 선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영미 법계에서 채택한 제도입니다. 사법연수원 수료자 중에서 바로 판검사를 임용하던 때는, 법조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직역이 나뉘고 그것이 오랜 기간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정 기간의 법조 경력을 요구하는 방식에 따르면 변호사나 검사가 판사가 되고, 판사가 변호사나 검사가 되는 것이 용이해집니다. 다양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판사가 되다 보니 임용 시 '순혈주의', '엘리트주의'를 방지하고 법원 조직이 관료화, 계급화, 서열화되는 것을 완화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로스쿨 제도 도입 취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시낭인 양산 방지'이다. 한 번의 시험만으로 인생이 좌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견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린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사법고시가 공정한 제도라고 이야기하지만,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완벽한 제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로스쿨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로스쿨 입학 이후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생각한다면 예전의 제도가 나은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가 생김으로써 얻게 된 수많은 부수익들도 있기에 이런 점들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로스쿨 입시에 내재된 불공정성이란 고등학교 시절의 노력을 평가하는 '학벌', 부모의 뒷받침이 있다면 챙기기 쉬운 '학점',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하기 어려운 'LEET' 등의 요소가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로스쿨이 활성화되면서 국민들은 법률서비스의 혜택을 누리기 쉬워졌고 수많은 변호사가 쏟아져 나왔다는 긍정적 효과도 무시하기는 어렵다. 특히 이전의 사법연수원 체제가 그들만의 리그, 기수 문화를 철저히 반영하는 것이었다면 로스쿨 체제는 그러한 문화에서 탈피하여 다양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처음 이 책을 펼칠 때만 하더라도 판사의 에세이 정도를 기대했으나 의외로 판사의 실무를 많이 다루고 있어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전자책으로 읽어서 쪽수가 적다고 느꼈는데 검색해 보니 352쪽 정도로 짧지는 않은 책이다. 여하튼, 이렇게 생생한 법 실무 이야기를 다룬 책이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