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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Feb 03. 2023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시를 읽는 순간들

까닭 없이 슬픔이 온몸을 감싸고 도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음 속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내 앞에 와르르 쏟아놓고, 이것들을 들여다 봐 달라고 마음 속으로 외친 순간들이 있었다. 점점 옹골지는 마음 사이에서 헤맨 시간이 길었다.


이제 더 이상 영글지 않은 감정을 정제하지 않은 채 쏟아놓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경험을 했고, 나를 위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날것의 표현은 지양해야 함을 안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 아름다운 순간을 누리는 것, 그리고 서로의 삶에 좋은 기억이 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집은, 그런 의미에서, 가치가 있다. 얇은 책 속 짧은 문장들에 고뇌와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서 시인은 인고의 시간을 거친다. 정으로 돌을 깎아내듯 글을 다듬고 조각들을 잘라내고 다시 문지르기를 수천, 수만번 반복한 결과가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글을 쓰는가? 그렇지 않다. 다만 그런 글을 보며 언젠가 이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하는 것이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시집의 제목으로 쓰이는 문장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이 시집을 읽기 전까지는 진은영 시인의 이름을 들어본 일이 없었다. 아니다, 언젠가 짧은 기사 단락에서 비슷한 이름을 본 것 같기도 하다.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봤을 때와 같은 감정이다. 서점에 다른 책을 사러 들렀다가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책을 집어들게 되는 그런 감정. '오래된 거리처럼' 사랑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오래된 거리가 사랑이라는 특질을 가질 수 있는가?


시에 논리를 들이대는 순간 그 의미는 퇴색되고 만다. 있는 그대로 '음미'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리는 '너'는 어떤 사람인가. 이 시의 '너'는 어떤 사람일까. 시인은 누구를 떠올리며 이 시를 썼을까. 결국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는 말에, 화자와 청자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결국 너에게 어울리는 피에 젖은 오후란,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란,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토요일이란,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이 솟아나는 저녁이란 화자가 느껴왔던 감정을 그러모아 '어울린다'는 말 아래에 조합한 것일지도 모른다.


시는 어떻게 세상에 말을 건네는가. 처음 시 몇 줄을 읽은 순간 누구에게 쓴 시인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슬픈 시였다. 그리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또한 시의 역할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움 뒷편에 숨어 있는 슬픈 마음들을 보듬고, 그것을 시인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 이러한 시집을 읽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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