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벌써 서른인데 아무 것도 이뤄 놓은 게 없다. 재산이 있나 남자친구가 있나 번듯한 직장이 있나. 해가 가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하는데... 같은 학원에서 일하는 친구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로 했다.
“이왕 배우는 거 자격증을 따는 게 어때?”
“자격증?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 아무 것도 없잖아. ‘쯩!’이라도 있어야 뭔가 한 것 같지.”
“자격증이라.. 면허증 어때?”
“무슨~ 차도 없는데 면허증을 왜 따?”
“뭐 다른 건 있냐? 국가공인자격증이라 누구나 다 인정해주잖아. 의미 있지. 면허 따면 차도 생길지 누가 알아?”
국가공인자격증이라는 이유로 차도 없는 우리는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결제를 할 때는 분명 집에서 1시간, 근무하는 보습학원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줄 알았는데.. 셔틀버스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우리 집은 너무 멀어서 셔틀버스가 없다고 한다. 학원 이름에 속았다. ‘구리’운전면허학원이라서 당연히 구리에 있는 줄 알았는데 남양주에서도 서울과 아주 머~언 곳에 있었다. 친구는 집 근처에서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데 내가 문제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매일 3시간 거리 여행을 떠나는 셈이어서 꼭 셔틀을 타야 하는데 환불은 안 된다고 하고.. 참 난감했다. 친구와 머리를 맞댄 끝에 내가 부지런을 떨기로 했다.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지하철을 타고 간 뒤 그 곳에서 셔틀버스를 타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가도 두 시간이 걸렸지만 세 시간보다는 나으니까.
일어나자마자 면허학원에 갔다가 오후 2시에 출근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9시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에 머리를 쿵쿵 쥐어박으며 면허학원에 도착하면 10시. 가는 길이 멀~고 험난했지만 우리에게 ‘쯩’을 선사할 운전을 대충 배울 수는 없었다. 제대로 배우겠다며 1종 보통을 선택한 탓에 자주 시동을 꺼뜨렸다. 연수를 받은 뒤 서울로 나와 점심을 먹고 출근했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살이 쪽쪽 빠졌다. 운전을 배우는데 다이어트까지 되다니 일석이조..는 개뿔. 너무 힘들었다. 초여름의 따가운 햇살은 우리의 왼쪽 팔을 새까맣게 태웠다. 팔 한쪽만으로 조는 학생들을 웃길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학과 시험, 기능 시험을 통과하고 도로주행만 남았다. 친구는 아버지 차를 몇 번 몰아본 적이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고, 역시나 부드럽게 주행을 마치고 당당히 합격했다. 내 차례다. 학원에서 보는 거니까 웬만하면 합격시켜주겠지... 마음을 다잡았지만 너무 떨렸다. 훕~훕~ 심호흡을 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침착하게, 차분하게, 난 할 수 있어! 이것도 못하면 이 험난한 세상 어떻게 살래?’
그래! 마지막 20대.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야지. 이대로 물러설 순 없어. 의지가 불끈 솟았다.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았다. 연습했던 길이니까 잘 할 수 있다. 우회전, 직진, 신호 보고 정차하기, 사이드 미러 보고 차선 바꾸기.. 그래, 잘 하고 있어. 합격이야. 합격할 것 같아. 힘내자! 이제 저 신호에서 섰다가 좌회전만 하면 끝이다. 끝났다.
끼익~~!!
“아악!! 브레이크!!! 아니!!! 앞차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브레이크를 밟아야죠!!!”
감독관이 소리쳤다. 감독관의 순발력과 보조 브레이크 덕분에 충돌은 면했다. 코 앞에 있는 차 뒷꽁무니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휴.. 합격은 무슨. 또 시험 보러 나와야겠네.
차에서 내리는데 뒷 좌석에 앉아 있던 친구라는 녀석이 쿡쿡 웃음을 참다가 깔깔거린다. 웃느라고 아주 난리가 났다. 내 불행이 너의 기쁨이냐. 그래, 마음껏 웃어라. 대신.. 시험 볼 때 꼭 같이 와 주고..
감독관이 다가와서 말했다.
“합격입니다.”
10년 전 깔깔거리며 나를 놀리던 친구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 무섭다나 뭐라나. 나야 당연히 운전 베테랑이지. 인생 참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