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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May 23. 2020

결국 지나간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월세를 전전하며 2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는 고모댁에 살다가 친구가 살고 있던 하숙집으로 옮겼다. 대학생이 된 동생, 돈을 벌기 위해 상경한 엄마와 같이 살기 위해 학교 앞에 있는 월세방을 구했다. 대학생들이 사는, 방만 있는 곳이라서 공동주방과 공동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빚을 갚는 것이 일 순위였기 때문에 생활비는 늘 부족했다. 아니 없었다. 1년 동안은 쌀을 살 돈도 없어서 돈이 생길 때마다 쌀집에서 살 수 있는 최소량의 쌀을 샀다. 반찬은 콩나물이 다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10여만 원의 돈을 모아 밥솥을 사러 갔다. 밥이라도 잘 먹자는 엄마의 바람 때문이었다. 유명 브랜드의 10인분짜리 밥솥을 사서 집에 가져다 놓고 엄마와 산책을 나갔다. 꽉 막혔던 삶에 실낱같은 숨구멍이 생겼다. 다음 날 끔찍하게도 우리의 숨구멍이 사라졌다. 순진했던 우리는 밥솥을 공동주방에 두었는데 누군가가 훔쳐간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숨이 막혔다. 평생 빚만 갚으며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고단한 삶은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2년마다 집을 구하면서 꽤 고생했다. 억이 넘는 빚을 갚으면서 보증금을 모은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아빠는 경제적인 문제로 시골에 남아 계셨기 때문에 엄마와 모든 것을 헤쳐 나갔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새로 집을 구했다. 시골에서 주부로만 살아오신 엄마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나, 대학생이었던 동생은 정말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 처음 들렀던 부동산에서 ‘지금 보여주는 집이 전부’라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최선이라며 보여준 집을 계약했다. 집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월 35만 원짜리 단칸방이었다. 단독주택의 2층에 문을 만들고 방을 개조해서 세를 준 것이었는데 다락방에 쥐가 우글거렸다. 화장실이 없어서 1층 주인집 마당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3달쯤 지났는데 주인이 월세를 30만 원으로 깎아주었다. 그땐 천사 같은 집주인이라며 너무 고마워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월 35만 원에 그런 집은 사기다. 지금도 그 돈이면 문이 제대로 달려 있고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 집을 구할 수 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주인이 5만 원을 깎아주었을까?


2년 뒤 새로 구한 집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1층에는 집주인이 살고 2층이 월세집이었다. 전에 살던 집에 비해 매우 넓고 주방과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계약을 하고 청소를 하러 갔더니 세상에... 온 세상 바퀴벌레가 그 집에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이틀 동안 약을 뿌리고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최선을 다해 바퀴벌레를 퇴치하고 이사를 했는데... 다음 날 발소리가 너무 크다면서 주인이 올라와서 주의를 주었다. 최대한 조심조심 걸어 다녔지만 주인은 매일 찾아왔다. 신경과민인 것 같았다. 10여 일을 지내다가 고민 끝에 이사를 가기로 했다. 다른 집을 구하기 전까지 집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이사를 준비하는 며칠 동안 주인은 만날 때마다 이제 발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그냥 살아도 된다고 말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음 집은 첫 번째 집보다 훨씬 좋은 5층짜리 빌라의 지하였다. 지하라도 좋았다. 엄마는 바쁘셔서 동생과 내가 계약을 하러 갔다. 이사를 하고 며칠 뒤, 부동산에서 법정 중개수수료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세였는데 전세가로 수수료를 책정한 데다가 법정 수수료의 최고 금액을 받았다.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아내가 공인중개사였고 남편은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자기 아이들 같다며 잘해준다더니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사기 치려고 하는 게 너무 화가 났다. 대놓고 따질 깜냥은 안 돼서 어떻게 해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았다. 영수증을 끊어달라고 하면 돈을 돌려달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듣는다는 정보를 보고 부동산에 찾아갔다. 영수증을 끊어달라고 했더니 못 끊어주겠다고 했다. 왜 못 끊어주냐, 돈을 더 받은 거 아니냐.. 소심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우리를 아주 못된 아이들 취급하면서 더 받았던 돈을 돌려주었다. 세상에.. 서울에서는 눈을 떠도 코를 베어간다더니... 무서운 곳이다. 나쁜 사람들이다.


그 집에 살 때 도둑이 들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창문으로 손이 불쑥 들어오더니 저금통을 잡으려고 했다. ‘도둑이야!!!’ 소리를 꽥 질렀어야 하는데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어처구니없게도 ‘누구세요...’였다. 누구세요.. 라니.. 너무 놀라서 자리에 얼어붙었고, 불쑥 들어왔던 손은 저금통이 잡히지 않자 컴컴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고 무서운 밤이었다. 방범창을 더 튼튼한 것으로 해야 하나.. 방범창은 집주인이 해 주는 건가..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집주인에게 말했더니 문단속을 잘하라고 했다. 방범창은 바꿔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창문이 있는 쪽은 빌라와 빌라 사이에 있는 구석진 곳이었는데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매일 잠을 설쳤다. 며칠 뒤 집에 들어갔더니 집안이 엉망이었다. 온 사방에 물건들과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고, 저금통에 들어있던 10원짜리 동전이 방안에 뿌려져 있었다. 경찰을 부르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없어진 물건은 거의 없었다. 우리 사정에 집안에 돈이 있었을 리도 없다. 돈이 될 만한 것을 훔치러 들어왔던 도둑이 가져갈 게 없으니까 화가 났는지 집안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집단속을 못한 우리 탓이라고 하면서 그 뒤로는 말도 없이 우리 집에 들락거렸다. 집이 지저분하다는 잔소리도 잊지 않았다. 도둑이 들었던 데다가 주인 내외의 간섭도 싫어진 참에 2년 계약이 끝나서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집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우리가 집을 구할 시간도 없이 촉박하게 이사를 들어오겠다는 집이 있었다. 부동산에 그 기간은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2주도 되지 않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10일이었나..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주인은 우리가 너무 괘씸하다면서 집이 나가든 안 나가든 계약이 끝나는 날짜에 맞춰서 이사를 하라고 통보했다. 하루도 어긋나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주인의 말을 듣다 보니 부동산(우리에게 중개수수료를 더 받으려고 했던)에서 우리에 대해 아주 나쁘게 말한 것 같았다. 계약 날까지는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한 달이면 충분히 집을 구할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에 무사히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이사 날짜를 맞추었다고 주인집에 이야기했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괜히 통쾌했다.


가족 모두가 열심히 벌고 모아서 2년마다 조금씩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뒤에 살았던 집에서는 사는 도중에 집주인이 바뀌었다. 이사를 나가는 날 새 주인이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며 돈을 내주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새로 들어가는 집에서는 빨리 보증금을 가져오라며 난리였다. 그렇게 애를 태우더니 결국에는 이삿짐센터의 잘못으로 문지방이 벗겨졌다면서 10만 원을 뜯어갔다.




월세를 살면서 빚을 갚기 시작할 때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 것만 같아서 암담하고 괴로웠다. 빚에 허덕이며 일만 하는 인생이라니 끔찍했다. 과연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가족 모두가 힘을 합해 돈을 모으고 갚으면서 버티고 견디다 보니, 어쩌면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조금씩 조금씩 피어올랐다. 버는 대로 아끼고 모아 9년 만에 빚을 모두 갚았다. 작은 아파트였지만 전셋집도 구했다. 빚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평생을 돈에 매여 살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이 생겼다. 일찍 결혼한 동생이 제부와 돈을 모아 집을 샀다. 그 뒤에 부모님이 집을 구입하셨고 나도 최근에 집을 가지게 됐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만났던 집주인들이 우리를 혹독하게 단련시켜 준 덕분에 가족 모두가 내 집을 갖게 되었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I wish I could tell you it gets better. But, it dosen't get better. You get better. -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렇지는 않을 거야. 대신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상황은 더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하기 않고 버틴다면, 너는 더 나은 인간이 될 것이다.
- 조안 리버스 Joan Rivers (미국 영화배우, 코미디언), 김민식 PD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너무나 암울하고 괴로웠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더 나은 인간이 되어 나를 옥죄던 환경과 상황을 바꾸었다. 죽고 싶을 만큼 앞이 깜깜하고 힘들어도 언젠가는 결국 지나간다. 그 시간 동안 상황에 매몰되어 무기력하게 살지, 버티고 견디며 더 나은 인간이 될지에 대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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