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나탈리 골드버그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쓰기 행위 그 자체에 있다. p.72
글쓰기를 하면서 느꼈던 복잡한 감정들(불안, 의문, 힘듦)을 알아채고 위로해주는 책이다. 필사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한 권을 모두 적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생길 때 이 책을 펼치면 문제를 풀어낼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개월이 되었다. 1월에 미작(글쓰기 모임)에서 매주 한 편씩 글을 쓰고 나누면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에 3월부터 멤버를 모집해서 ‘매일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글을 쓰면서 재밌기도 하지만 괴로운 날도 많다. 내 글이,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못나 보일 때가 자주 있는데 그런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속 시원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늘 좋은 글만 쓸 수는 없다는 것, 그렇다고 엉망인 글만 쓰게 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 우리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자신이 썼던 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가 쓴 글이 나 자신은 아니라는 것을 선명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언제나 좋은 글만 쓰고 싶다는 욕심에서 벗어나 그저 글쓰기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힘을 빼도 좋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매주 수요일이 되면 다음 날 미작 모임에 제출할 글을 완성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처럼 긴장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다듬는다.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서 글을 읽고 합평을 한다. 4월에는 매주 좋은 평을 받았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글, 따뜻한 온기가 도는 글, 양지바른 곳을 산책하는 듯한 느낌의 글 등등 생각지도 못한 호평을 받아서 매주 마음이 벅찼다. 나도 몰랐던 내 글의 장점을 알아주고 용기를 주는 덕에 매일 글을 쓸 힘을 얻었다. 합평을 하면서 좋은 글이라는 확신이 들면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렸다. 지적을 많이 받거나 특별한 감동이 없는 글은 노트북 폴더 안에 숨겨두었다.
4주 이상 호평이 이어지자 글쓰기를 즐기기보다 더 좋은 글, 내 장점이 부각될 수 있는 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글을 쓰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전에 썼던 좋은 문장이나 글의 느낌을 잡기 위해 발버둥 쳤다. 편하게 쓰기 시작했다가도 내 안의 검열관이 출동해서 글을 마치기도 전에 문장을 고치는 날이 많아졌다. 검열관의 속삭임을 듣고 수정하면 할수록 글은 점점 더 이상해졌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고 횡설수설하는 글이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이 점점 숙제처럼 느껴졌다.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을 경험하면서 꾸준히 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평가에 연연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들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앞으로 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p.46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분에 넘치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앞으로 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자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글을 쓰는 순간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힘을 빼고 솔직한 마음을 풀어놓기로 했다. 글을 쓸 때만큼은 검열관을 숨겨놓기로 했다.
호평을 받았던 글, 혹평을 받았던 글에서도 빠져나오기로 했다. 나는 내 글과 내가 같다고 생각했다. 잘 쓴 글에서의 나는 잘났고 못 쓴 글에서의 나는 못났다. 글과 나를 동일시하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이 힘들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많아질수록 나 자신도 못마땅하게 여겼다.
우리가 실존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언어가 영구 불변하며 견고하고 우리가 영원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승인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내가 낭송한 시는 내가 아니다. 내가 만들어낸 시는 그 시를 쓰고 있을 때의 내 생각, 내 손,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내가 느낀 감정들일 뿐이다. 스스로 속지 않도록 경계하라. 시시각각 우리는 변한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변한다는 사실, 이것처럼 좋은 기회도 없다. 글쓰기는 우리를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당신은 좋은 시를 쓰고, 그 시에서 떠나라. 시에 들어가 있는 단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 몸을 빌어 밖으로 표출되었던 ‘위대한 순간’이다. p.71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네가 쓴 글은 네가 아니다’라고 말해 줘서 안심이 되었다. 매 순간 우리는 변하며 변한다는 것은 좋은 기회라는 말이 참 반가웠다. 글쓰기가 나를 동결시키려고 하는 찰나에 나를 자유롭게 흐르도록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독서만큼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삶의 동반자로서 글쓰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던 내게 좋은 길잡이가 된 책이다. 글을 쓰면서 흔들릴 때마다 조언을 구할 좋은 친구를 만나 반갑다.
글쓰기는 당신이 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다정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