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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Feb 26. 2022

저자처럼 느릿느릿

<책에서 한 달 살기>를 읽고

<책에서 한 달 살기>는 미작(글 모임) 지정 책으로 만났다. 요즘 여러 번 읽을 책이 아니라면 구입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책장에 버리지 못하는 책들이 쌓여가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 책을 대출하기 위해 평소 이용하는 도서관을 검색했는데 없었다. 밀리의 서재에도 없어서 사야 하나.. 고민하며 중고서점을 검색했는데 못 찾아서 당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울시 두 군데 자치구 도서관을 검색했고, 딱 한 곳에 있는 책을 찾아냈다.


처음 방문한 도서관에서 도서대출 카드를 만들고 책을 빌렸다. 작고 얇은 두께와 ‘밝은 빛이 가득한 집 한편에 걸터앉아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담긴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표지에 적힌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문장도 저자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책에서의 한 달 살기>를 처음 접했을 때, 그러니까 제목과 표지만 보고 기대했던 내용은 이렇다.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게 된 이유, 구체적인 과정, 한 권을 한 달에 몇 번이나 읽는지, 어떤 시간에 읽는지, 하루에 몇 시간을 투자하는지, 한 권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등등. 나라면 한 달간 읽을 책으로 무엇을 고를까, 즐거운 상상도 했다.


프랑스로 요리 유학을 떠나 요리사로서 살던 저자는 꾸역꾸역 버티는 삶에 지친다. 남편과 상의 끝에 둘 다 직장을 그만두고 2평도 채 안 되는 미니밴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작아진 집(미니밴)에 맞춰 책장을 정리하면서 선별한 책 세 권과 전자책 등 총 열한 권의 책을 각각 한 달간 읽으며 쓴 에세이다. 소개하는 책마다 세 개의 소제목으로 글을 구성했다. ‘이 책을 한 달 살기 책으로 정한 이유, 책을 읽으며 느낀 점, 이 책이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소란> <*글쓰기의 최전선>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아무튼, 비건> <*대리사회> <사라지는 번역자들> <안녕, 동백숲 작은 집> <*심신 단련>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지>

저자가 한 달 동안 읽은 책 / * 표시한 제목은 읽은 책


저자가 한 달씩 함께 한 책을 소개하는 구성이라서 멈칫했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소개하는 책은 꺼려진다. 직접 읽기 전에 줄거리, 감상 등을 접하면 막상 그 책을 읽을 땐 맥이 빠지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읽고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좋다. 읽은 책 부분만 골라서 읽을까..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저자는 소개하는 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책을 매개로 그녀의 삶과 생각을 천천히, 조금씩 들려준다.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의 속도에 익숙해졌고, 기대했던 내용은 예상치 못한 여러 페이지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책을 천천히 여러 번 읽어야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한 기분이 든다. 빨리 읽고 내용을 단번에 파악하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오늘도 느릿느릿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천천히 책에 빠져드는 감각은, 나만이 아는 아주 특별한 장소가 생기는 것처럼 소중하다.
<책에서 한 달 살기> p.194


책을 읽는 것은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일인데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어서 내놓으라고 혼자 떼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첫인상만으로 만들어 낸 ‘듣고 싶은 내용’만 원했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들어볼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다. 처음엔 기대한 내용이 아니라 실망했고, 소개하는 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책을 덮을 때는 느릿느릿 책을 읽고 삶을 곱씹는 저자에게 귀 기울이게 됐다.


기대 없이 읽은 책은 어떤 내용이든 흥미로운데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 멋대로 기대한 책은 예상과 다를 때 꽤 실망한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편견이나 기대 없이 책을 읽어야지’라고 다짐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한다. 빨리 책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는 급한 마음도 한몫했을 것이다. 책장을 덮기 전에 저자와 속도를 맞춰 대화를 나누게 되어 다행이다.


저자처럼 느릿느릿,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 어떨까.. 색다른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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