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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Mar 12. 2022

오래오래 즐기고 싶다면

소독 티슈로 핸들과 안장을 닦고 따릉이에 올라앉았다. 예상보다 바람이 찼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자전거에 앉아 있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햇살이 너무나 따사롭다. 대략적인 경로를 정한 뒤 바퀴를 굴렸다. 열 바퀴나 갔을까.. 금세 허벅지가 뻐근해져서 깜짝 놀랐다. 이제 막 타기 시작했는데 힘들다니.. 과연 오늘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자전거를 탈 때 신기한 게, 처음에는 무척 다리가 아프고 힘들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평온해진다. '그만 탈까. 허벅지는 왜 이렇게 아프지? 바람은 왜 이렇게 찬 거야. 사람 참 많네. 봄이긴 봄인가 봐...'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생각하지 않는 두 다리는 무심히 움직인다.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자전거를 타려면 속도와 꾸준함이 중요하다. '빠르게 또는 느리게'가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일정한 속도'를 찾아 꾸준히 달려야 한다. 


따릉이를 만난 2020년 어느 날, 자전거로 체력을 기르겠다는 굳은 의지로 열정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느릿느릿 달리는 몇몇 자전거를 제치고 신나게 달렸다. 30분은 달렸겠지~ 싶어서 거친 숨소리를 내며 쉴 곳을 찾았다. 속도는 점차 줄어들고 입안은 말라갔다. 그때, 느릿느릿 달린다고 여겼던 자전거 몇 대가 아까와 같은 속도로 지나쳐갔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시간을 체크해 보니 나는 10분도 달리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오래 꾸준히 타려면 나에게 맞는 속도가 중요하구나. 쉬는 사이, 너무 느리다고 코웃음 치며 앞질렀던 자전거 한 대가 유유히 지나갔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따뜻한 계절이 돌아왔다. 의지와 열정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게 하는 힘은 의지나 열정이 아니다. 금세 사그라들 열정을 연료로 한 번에 힘을 쏟아버리면 오히려 지쳐서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현재 내 몸과 날씨에 맞는 일정한 속도를 찾아 기복 없이 페달을 밟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만 타고 말 거라면 온 힘을 쏟아부어도 되지만, 자전거를 오래오래 즐기고 싶다면 말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고 싶다는 마음과 열정이 가득할 때는 모든 것이 글감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몇 날 며칠 글만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의지나 열정은 생각보다 금세 꺼진다. 무엇이든 일상이 되면 지루해진다. 그때 나를 이끌어주는 것은 적당한 속도와 꾸준함이 만들어 낸 '습관'이다. 무심히 페달을 밟는 두 다리처럼, 열정이 넘칠 때도 쓰기 싫을 때도 기복 없이 타자를 두드릴 수 있는 손이 필요하다. 


언덕을 만나 좀 더 힘을 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겨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쓰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때는 그동안 쌓아온 시간을 바탕으로 힘껏 달리면 된다. 하지만 삶은 힘껏 달려야 할 시간보다 지루한 일상이 더 많다. 그 일상을 나만의 속도와 꾸준함으로 채운다면 힘껏 달리고 싶을 때 신나게 달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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