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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Mar 19. 2022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 두 개씩 내 삶으로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는 글쓰기 모임 책으로 만났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어떤 내용인지 예상하지 못했다. 흰색 바탕의 책 표지에는 ‘하얀 린넨 위에 면 패드, 손수건, 텀블러, 나무 칫솔, 나무 접시와 비누 사진’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저자의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도 가볍게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쓰였다.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로웨이스트 방법을 소개한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 포장을 줄이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서 쓰레기를 줄이려는 세계적인 움직임


딱히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자와 비슷한 습관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첫째, 장바구니를 들고 다닌다. 우연히 장바구니 브랜드 바쿠백을 알게 되었는데 디자인이 너무 예뻤다. 착착 접어 작은 주머니에 쏙 넣으면 휴대가 간편하다는 것도 좋아서 구입했다. 살 때는 사실 장바구니로 생각하기보다 외출 시 갑자기 짐이 생겼을 때 사용할 작정이었다. 8년째 사용하고 있는데 화려한 색상이 여전하고 디자인도 질리지 않아 애정하고 있다. 아쉽게도 작은 구멍이 하나 생겼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젠 장바구니가 없는 날 봉지를 받게 되면 쓰레기를 받아온 것처럼 찝찝하다.


둘째, 면 생리대를 쓴다. 시험관을 시작하면서 유해한 일회용 생리대 대신 면 생리대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좋다는 건 가리지 않고 도전해 볼 때라 조금의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처음엔 매번 빨아야 하는 게 너무 귀찮고 힘들었는데 몇 달 쓰다 보니 생리통이 사라졌다. 저자의 말대로 일회용 생리대와 혈이 만나 발생하는 특유의 악취도 없어졌다. 다시는 일회용 생리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셋째, 학원에서 일할 때 종이컵을 쓰게 되면 이름을 써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옆자리 선생님의 컵과 섞여 새 컵을 꺼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종이컵을 사용하는 게 그냥 아까웠다.


넷째, 병을 재활용한다. 작고 예쁜 병에는 설탕, 소금 등을 보관하고 조금 큰 병들은 꽃병으로 쓴다. 저자가 보여준 델몬트 병은 어릴 적 우리 집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으니 병을 재활용하는 것은 엄마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장착하고 있던 습관들이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된다니 잘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작년에 잠깐 제로웨이스트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시기가 있다. 그때 주방 세제를 친환경 비누로, 수세미는 옥수수 전분을 발효해 만든 제품으로 바꿨다. 카페에 갈 때는 꼭 텀블러를 챙겼다. 하지만 주방 비누와는 이별했고, 텀블러 사용은 습관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주방 비누는 비싼 가격과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서 포기했다. 텀블러는 인식하지 못한 사이 멀어져 버렸고.


금세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는데 그 이유는 제로웨이스트가 또 다른 소비를 부추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제로웨이스트 사진들은 하나같이 예쁘게 정돈되어 있다. 적당한 햇빛을 받으며 가지런히 놓인 린넨 소재 살림, 은은한 파스텔 톤의 친환경 제품들.. 예뻐 보였지만 그것들은 일상 속에 녹아든 삶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잘 만들어진 작품 같았다.


한 번은 소창 행주를 사려고 문의했는데 생각보다 비싸서 포기했다. '환경을 생각해야지. 비싸지만 예쁘지? 이걸 사~'라는 느낌. 내가 경험한 제로웨이스트 비누들(주방용, 샴푸용, 세안용 등)은 대부분 비쌌다. 오래 쓸 수 있는 물건 (8년째 사용하고 있는 장바구니 바쿠백)은 편하게 지갑을 열 수 있었지만, 비누는 달랐다. 어찌나 빨리 사라지는지 구입할 때마다 부담이 쌓여 비누를 포기했다. 대신 친환경 제품이면서 샴푸, 세안, 바디에 사용할 수 있는 닥터 브로너스 제품에 정착했다.


이런 비누에 대한 기억 때문에 비누 예찬에 대한 내용에는 동의하기가 어려웠지만, 소소한 경험을 들려주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가지는 실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해 보고 싶은 품목은 손수건, 소창 행주, 실리콘 백.


손수건과 소창 행주 : 식사할 때 휴지와 물티슈를 굉장히 많이 쓴다. 종이컵을 아끼는 나와 휴지&물티슈를 많이 쓰는 내가 모순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낭비가 심하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크게 인식하지 않았는데 소창 행주와 손수건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뜨끔했다. 비싸서 허겁지겁 지갑을 닫았던 기억이 있는 소창 행주를 다시 검색해 보았더니 예전과 달리 매우 저렴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소창 행주를 만난 것은 몇 년 전이니까 그 사이 공급이 많아져서 싸진 건지, 당시의 내가 운 없게도 비싼 제품을 만난 건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휴지나 물티슈와 멀어질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거다.


실리콘 백 : 쌀이나 야채, 과일을 보관할 때 지퍼백을 상당히 많이 쓴다. 결혼 전에 엄마가 지퍼백을 하도 많이 써서 너무 낭비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살림을 하다 보니 지퍼백만큼 간편하고 좋은 게 없다. 하지만 쌀 한 번 담았다가 버리기에는 또 너무 아깝다. 지퍼백 사용을 혁신적으로 줄여줄 실리콘 백을 알게 되어 기쁘다.


잊을만할 때 제로웨이스트 관련 책을 읽고 의식을 재정비하는 것이 좋겠다. 흐트러졌던 좋은 습관을 단단히 하고 새로이 알게 된 것을 한두 개씩 내 삶에 가져오기. 그렇게 조금씩 변화하다 보면 나도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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