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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Mar 26. 2022

쓰는 사람들

<쓰는 사람, 이은정>을 읽고

도서관에서 사전 정보 없이 에세이를 고를 때는 책등과 제목을 본다. 끌리는 책이 있으면 아무 장이나 펼쳐 한 문단 정도 읽고, 맘에 들면 몇 페이지 더 넘겨본다. 어떤 사람은 차례를 봐야 한다던데 나는 차례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 <쓰는 사람, 이은정>도 이 과정을 거쳐 만났다.


'쓰는 사람'이라는 문구를 보고, 쓰기에 대한 정보 위주의 책이라면 빌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쓰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은 딱딱하게 느껴지고 재미가 없다. 규칙에 따라 쓰면서 글을 발전시키는 것도 좋겠지만, 좋아하는 글을 읽으며 스스로 배워나가고 싶다. 잠깐 펼쳐본 글에서 작가의 삶이 엿보여 책을 데려왔다.  


첫 번째 글 '기적은 가까이에 있다'는 느슨하게 누워있던 나를 일으켜 책을 바짝 당겨 들게 만들었다. 작가는 살던 집 계약이 끝나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쏙 드는, 바닷가에 위치한 집이 매물로 나왔고 집은 마음에 드는데 작가에게는 돈이 없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은행 대출이 가능한지 알아보겠다고 하고 은행에 갔지만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듣는다. 주인아주머니가 결과를 기다리실까 봐 다시 그 집으로 찾아가서 솔직하게 사정을 말한 그녀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주인아주머니가 이렇게 제안한 것이다. '전세도 좋고 월세도 좋으니 그 집에 살라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내 주인아주머니는 내 손을 꼭 잡더니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바르게 살면 좋은 일들이 생긴다고... 그 말 때문에, 그 따뜻한 손 때문에, 나는 그만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여기 와서 글 열심히 쓰겠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더욱 반색하며 말했다. "작가였구나! 좋은 작가가 되겠어." 나는 그 집에서 쓴 소설로 문학상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다.
<쓰는 사람, 이은정> p.17  


글 전체에 따스함과 솔직함,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은은히 퍼져있다. '이런 에세이를 쓰며 작가와 같은 일상을 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흠뻑 빠졌다. 일단 글의 소재가 일상 속 사소한 일이라는 게 좋다. 거창한 무언가로 만들어가는 글보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일상으로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글을 사랑한다.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 학원 강사 생활을 했었고, 아버지를 미워했었지만 지금은 미움 대신 다른 틈이 생겼다는 점, 쓰는 일만이 나를 구원해 주었던 과거가 있다는 점, 매일 무언가 쓰는 사람이라는 점. 작가와의 공통점으로 '매일 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다니. 괜히 혼자 영광이다.


삶의 곳곳에서 감사를 발견하고, 진심을 담은 선의를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 담담하고 솔직한 글 속에 빛나는 감동과 공감을 담아내는 사람. 쓰는 사람, 이은정을 좋아하게 됐다. 그녀의 앞날이 즐겁고 따스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작가는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픽션이 됐든 논픽션이 됐든 글에는 반드시 글쓴이의 영혼이 들어가게 되어있는데,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의 글에서만 빛을 발하는 감동과 공감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쓰는 사람, 이은정> p.220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의 글에서만 빛을 발하는 감동과 공감' 바로 이 책 <쓰는 사람, 이은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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