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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Apr 09. 2022

자책 대신 인정

얼마 전 3주 과정 캘리그래피를 시작했다. 첫 주에는 너무나 재밌었던 캘리그래피가 2주 차에는 부담스러워졌다. 과제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1주 차에는 10~20분이면 과제를 끝낼 수 있었는데 2주 차부터 1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부담스러워진 또 한 가지 이유는 나의 장점이자 단점인 '열심' 때문이다. 가볍게 시작한 일도 하다 보면 나는 너~무 열심히 한다. 배우는 걸 좋아해서 초반에는 어떤 일에서든 재미를 느끼는 데 그러다 보면 과하게 몰입한다. 


'매일 글씨를 쓰며 힐링하자'라는 소박한 목표에서 멀리 달아나, 각종 영상을 찾아보며 '제대로' 기본을 다지려는 나를 알아차렸다. 일주일 만에 구독을 시작한 캘리그래피 유튜브 채널이 몇 개 생겼다. 그 과정이 즐겁고 여유로우면 상관없지만 버겁다는 게 문제다. 


캘리그래피에 선뜻 내주고 싶은 시간은 최대 1시간이다. 그 이상이 되면 다른 일상이 흔들리기 때문에 곤란하다. 그런데 나의 고질적인 '열심' 때문에 캘리그래피를 시작하면 1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과제를 하면서 이해가 안 되거나 좀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영상을 시청한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른 영상을 클릭하고 또 클릭하게 된다. 


가령, 매일 과제를 하기 전에 '선 긋기' 연습을 하는데 '선 긋기를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되는지,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연습은 무엇인지' 등등 많은 것을 고민한다. 전문가가 될 것도 아니고, 심지어 힐링을 위해 가볍게 시작했으면서 뭘 그리 깊이 파고드는지. 문득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적당히, 쉬엄쉬엄 놀면서 할 순 없나. 


이런 상황에서 예전의 나는 스스로를 비난하기 바빴다. '나는 왜 이럴까. 잘하지도 못하면서 뭘 그렇게 기본을 다지려고 할까. 적당히 하는 걸 왜 이렇게 못 할까' 등등. 그러면서도 이런 나를 어찌하지 못하고 계속 열심히 했다. 그게 정답이라고 믿으면서. 부담에 자책이 더해지고,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활동이 쌓이면서 급격히 피로해지곤 했다. 그렇게 포기해버린 것이 매우 많다. 


다행히 지금은 이런 나를 잘 알기 때문에 힘껏 달리려는 스스로를 제지할 수 있다. 자책은 나에게도 활동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심'이라는 흥에 취해 마구 달리다가는 금세 피로가 쌓이면 아예 포기하게 된다. 이럴 때는 진정하는 게 중요하다. 먼저 과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짧은 시간에 미션만 후다닥 끝내거나, 다 내려놓고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 것도 좋다.  


무엇이든 '열심히'하는 것은 장점도 있다. 쉽게 몰입하게 되고 기대보다 빠르게 실력이 는다. 나에게 '열심히 한다'는 '마음을 다한다'와 비슷한 의미이기 때문에, 활동이 끝나고 나면 매우 뿌듯하다. 다만, 이번 캘리그래피처럼 피곤하게 느껴질 때는 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멈춰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재밌는 건 마음을 내려놓고 편해지면 다시 해나갈 힘이 생긴다. 어제는 캘리 과제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져서 하루를 쉬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잠깐 연습만 할까'라는 생각으로 드로잉북을 펼쳤는데... 그 자리에 앉아 과제를 다 해버렸다. ㅎㅎ


어떤 경우라도 자책하지 않는 것, 나를 잘 알고 이해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 그래야 삶의 많은 순간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것 같다. 남은 캘리 과정도 편하게, 즐겁게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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