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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May 13. 2022

저마다의 작은 기쁨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는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의 저자 편성준과 아내 윤혜자가 공동 집필한 책이다. 유난히 책이 읽히지 않던 지난달, 편하게 집중할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옆 동네 도서관에서 발견하곤 상호대차를 신청했다. <부부가 둘다 놀고 있습니다>를 꽤 재밌게 읽었고, 우리 부부의 앞날이 불안하고 암담할 때마다 펼쳐 들어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이 책은 저자 편성준이 제주에 내려가 고독을 즐겼던 한 달 동안, 편성준과 윤혜자가 쓴 글을 엮은 책이다. 그는 다니던 광고 회사를 무작정 그만두고 놀던 중이었는데 아내 윤혜자가 불쑥 '제주에 내려가서 한 달만 글 쓰고 책 읽으면서 놀다 오'라고 제안한다. 혼자 제주에 내려가 한 달 동안 글 쓰고 책을 읽는다면.. 재밌을까? 외로울까?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즐길 수 있을까? 궁금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한 것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라고 했다. 아직 나는 외로움보다는 고독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p.11


제주에서 그는 책&글과 시간을 보내며 아내와 통화하고 가끔 지인들을 만나고 전화나 메신저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서울에서 그녀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고독'한 제주 & 서울에서의 하루 이야기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초반에는 '뭐 이런 걸로 글을 쓰나..'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빠져들어 킬킬대는 스스로를 깨닫고는 무안해졌다. 자주 웃어대는 나를 보고 내편이 무슨 얘기냐며 궁금해하길래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상에..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장을 보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 술을 한 잔 마시고 아내와 통화하는, 남편이 그리워 술을 마신다는.. 부부의 정말 별것 없는 일상이다. 시시한 일상인데 나도 모르게 큭큭 웃게 만드는 포인트가 있다. 역시 글쓰기에 있어 글감은 문제가 아니다. 


편안하게 때론 지루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 작은 웃음, 이 작은 기쁨이 무거운 삶을 가볍고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한 달 동안 글과 책을 벗 삼아 놀기 위해 제주도에 갔지만 '놀고 있다는 사실과 가벼워지는 통장' 때문에 그들도 자주 심란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겁게 다가오는 부담, 막연한 내일, 외로움, 그리움.. 등에 짓눌리지 않고 '이것도 대가라면 대가인데. 견뎌야 한다(p.138)'라는 자세로 오늘을 사는 그들. 반백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부부와 닮아 있어 더욱 공감했고 위로받았다. 그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이것도 대가라면 대가인데 견뎌야 한다. 


누구나 영화 같은 인생을 꿈꾼다. 그러나 대부분의 삶은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간다. 간혹 총이 등장할 순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 총에서 탄환이 발사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엔 '발사되지 않은 총'들이 너무나 많다. 무릇 인간의 삶이란 무의미로 점철되어 있으며,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산문처럼 지리멸렬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p.176


특별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지리멸렬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저마다의 작은 기쁨과 즐거움을 찾아 누리는 것, 그것이 삶을 즐기는 최선이 아닐까 한다. 기대 이상으로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선물해 준 이들 부부가 내일은 조금 더 즐겁고 풍요로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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