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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May 20. 2022

나로 살아간다는 것

<긴긴밤>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 코뿔소 노든의 지난한 여정을 담은 <긴긴밤>은 모임 책으로 만났다. 어린 시절을 코끼리들과 보낸 뒤 독립하게 된 노든과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난 꼬마 펭귄의 긴 여정을 그리고 있다. 흰바위 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가족을 잃은 어린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곳)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고아원에 남을지 세상으로 나가 궁금한 것들에 대한 답을 찾을지,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노든은 훌륭한 코뿔소가 되기 위해 고아원을 나오기로 한다.


이후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딸을 낳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던 그에게 ‘밤보다 길고 어두운 암흑’이 찾아온다. 흰바위 코뿔소의 뿔을 노린 인간들이 아내와 딸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노든의 긴긴밤은 동물원에서 만난 코뿔소 ‘앙가부’, 전쟁으로 인해 동물원을 나서던 길에 만난 펭귄 ‘치쿠’, 치쿠가 품고 있던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과 함께 하게 된다.




노든의 삶은 행복했던 순간보다 고단했던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위로가 되었던 친구 ‘앙가부’를 떠나보내고, 긴 여정을 함께 걷던 ‘치쿠’도 죽는다. 치쿠가 품던 알을 소중히 지켜 태어난 어린 펭귄도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행복한 시절도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하는 때를 만나고, 소중한 인연을 떠나보내기도 하는 노든.


한때는 소중한 인연이라면 평생 함께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때의 나라면 죽어가는 노든을 두고 바다를 찾아 떠나는 어린 펭귄을 말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바다를 찾아’ 떠나는 펭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로서 온전히 바로 서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뿔을 노리는 인간들의 공격이나 전쟁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외부의 시련뿐만 아니라 내부에게서 올라오는 분노와 불안 등과 함께 가야 한다. 험난한 세상에 혼자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외로울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 대부분의 시기에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한다. 가족을 잃었을 때 노든의 곁에서 새로운 미래를 도모한 ‘앙가부’, 홀로 동물원을 나섰을 때 길동무가 되어 동행한 ‘치쿠’,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노든의 삶에 큰 의미가 된 ‘어린 펭귄’처럼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떠나보내게 된다. 늘 함께 하고 싶었던 친구와 서먹하게 이별하기도 하고 죽도록 사랑했던 연인을 증오와 함께 차버리기도 한다. 다양한 사건사고로, 또는 이유도 모른 채 사랑했던 이들과 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소중한 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우리 삶에 녹아들어 앞으로의 여정에 크고 작은 힘이 된다.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 코뿔소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교류와 추억과 사랑이 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고, 시절마다 만나는 이들을 소중히 여기며, 지난 삶의 이야기를 추억으로 곱씹으며, 묵묵히 긴긴밤을 살아내는 노든. 그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만난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긴긴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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