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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Jun 25. 2022

지금 이 순간을

모두 웃는 장례식

<모두 웃는 장례식>은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생전 장례식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동화다. 13살 윤서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차고를 개조해 서점을 개업한 아빠와 상하이 지사 근무를 신청해 떠난 엄마, 둘은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달라서 사이가 안 좋다. 방학을 맞은 윤서는 엄마가 있는 상하이에 갈 생각에 들떠 있다. 하지만 암에 걸린 할머니가 병세 악화로 집에 오시고, 생전 장례식을 하겠다고 선언하신다.


“나 죽은 뒤에 우르르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 무슨 소용이야. 살아 있을 때, 누가 누군지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낫지, 안 그래?” <모두 웃는 장례식> p.31  


가족들은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당황하지만, 결국 할머니의 뜻에 따라 장례식을 준비한다. 신문에 생전 장례식 광고를 내고, 윤서 고모는 할머니에게 결혼할 사람을 소개한다. 윤서와 친구들은 할머니가 일하던 시장에 가서 지인들의 영상을 찍고 감사패를 만들어 행사를 준비한다.


년 전,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을 읽고 엄마와 죽음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아버지, 제가 알아야 할 게 있어요. 아버지가 생명 유지를 위해 얼마큼 견뎌 낼 용기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상태면 사는 게 괴롭지 않을지 알아야만 해요.” 그녀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정말로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글쎄,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미식축구 중계를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살고 싶구나. 그럴 수만 있다면 통증이 좀 심하더라도 이겨낼 자신이 있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 p.280  


나도 작가처럼 엄마에게 ‘엄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웠다. 엄마와 책 얘기를 나누면서, 작가가 아버지에게 건넨 질문을 그대로 해보았다. 그런데 엄마의 대답이 놀라웠다. 엄마는 누워서 살아야 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누워만 있어야 한다면 병원에서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는 건 싫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누워만 계셔도 생명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여기고 있었다. 엄마의 솔직한 마음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죽음이 무섭고 두렵다고 해서 피할 것이 아니라 종종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정말 엄마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이 날의 대화를 계기로 자녀가 생각하는 마지막과 부모님이 원하는 마지막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서의 할머니가 죽기 전, 사랑하는 이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싶어 했던 모습이 이해가 된다. 윤서의 아빠와 엄마, 고모, 큰아빠와 작은 아빠는 할머니의 죽음을 피하거나 두려워할 뿐이었지만 당사자인 할머니는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누고 싶어 했다. 할머니의 소원 덕분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여 얼굴을 보고 마음을 전하는 모습이 참으로 따뜻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리다. 특히 부모님은 날이 갈수록 약해지시는 게 선명히 보여서 더 그렇다. ‘부모님’과 ‘죽음’을 나란히 두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몰려든다.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닥쳐올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 마지막이 닥칠지 모르기에 우리는 더 자주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마지막을 자주 생각할수록 오늘을 더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모두 웃는 장례식>을 읽고 난 뒤, 부모님과 점심을 먹고 엄마와 야경을 보러 갔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대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따뜻하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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