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망 Aug 06. 2022

감사일기 1000일

이대로 충분해

2019년 11월 4일부터 시작한 감사일기가 2022년 7월 30일, 1000일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계속 쓸 줄은 몰랐다. 1000일이 된 것도, 지금까지 꾸준히 써 온 나도 신기하다. 블로그에서 운영하고 있는 매일 글쓰기 '매글'에서 2주 쓰고 1주를 쉬고 있으니 그렇게 쌓인 글도 꽤 된다. 매글에서 쓴 글 중 매주 한 편을 골라 브런치에 올렸다. 그동안 썼던 글을 읽어보았는데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즐거웠다.


나는 옛일에 대한 기억이 흐린 편이다. 특히 특정 사건이 몇 년도에 일어난 일인지 잘 모른다. 얼마 전 병원에서 진료 내역을 물어보는 데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난감했는데 블로그 기록을 뒤져 해당 연도를 적어냈다.


기록은 당시의 상황과 마음, 생각 등을 알게 해 준다.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떠올리기 어려운 사소한 일들도 말이다. 그렇게 기록을 통해 새겨진 생각과 마음은 나의 어딘가에 새겨져 단단한 내일의 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거라 믿는다.


일 말고는 한 가지를 꾸준히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어찌 이렇게 오랫동안 감사일기와 글쓰기를 이어올 수 있었을까.. 블로그에 공언하기, 꾸준히 하고 있는 멘토에게 배우기, 꾸준히 쓰는 나 자신에게 100일 200일~ 선물하기 등등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


에세이 연습을 하겠다고 감사일기를 길~게 잘 쓰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며칠 하니까 금세 지쳐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잘 쓰려다가 이어가지 못할 것 같아서 대충 썼다. 사건을 나열하기만 한 날도 있고, 일기라고 칭하기도 민망한 짧은 메모도 많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글감이 되는 사고의 한 자락을 건져 낼 때도 많았다. 감사일기를 쓰다가 말이 너무 길어져 새로운 글 한 편으로 완성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짧더라도 감사일기를 쓰면서 매일을 돌아보고, 생각과 사고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렇게 건져 올린 생각의 조각들을 매글이나 내글빛에서 한 편의 글로 정리해왔던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앞으로도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일기는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좋은 선물을 주었다.


1. 매일 성취감,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매일 감사일기를 쓰면서 작은 성취감을 느꼈고, 그 성취감이 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용기는 또 다른 도전을 불러왔으며, 그 과정을 통해 예전보다 용감하게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감사일기를 쓴 지 130여 일쯤 되었을 때 덜컥 매일 글쓰기 '매글'을 시작한 것도 감사일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2. 나에 대한 믿음 - 자기 효능감

나는 어떤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고, 시작하더라도 완벽을 추구하느라 정작 본질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감사일기를 쓰면서도 오랜 시간 꾸준히 해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많은 이들에게 공언한 것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블로그에 감사일기가 끊어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으로 매일 썼다. 쓰기 싫은 날엔 이웃 공개로 한 줄만 쓰기도 했다. 과연 정말 감사한 게 맞을까..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꾸역꾸역 이어가는 날이 많았다. 300일이 넘어서니까 안 쓰면 허전한 상태가 되었고, 그렇게 매일 숨 쉬듯 1000일을 써오면서 나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졌다.

* 자기 효능감 :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


3. 나와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

무엇보다 좋은 것은 나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했다는 것이다. 감사일기를 쓸 당시, 내면에 가득한 부정적인 무의식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었다. 평소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내면에서 올라오는 말들 말이다. '모든 것이 엉망이야. 넌 결국 실패할 거야. 최악이야. 나는 못해. 나는 쓸모없어. 등등'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의심했는데 300일이 넘어서니 나를 갉아먹는 말들 대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들을 하게 되었다. 못마땅하기만 했던 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며 받아들이게 되었고, 늘 주눅 든 채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적극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감사일기를 썼다고 해서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살고 오늘 같은 내일을 산다. 그런데 그날들이 조금씩 좋아진다. 첫날 감사일기를 쓰던 나와 300일째 감사일기를 쓰던 나는 거의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첫날의 나와 1000일째의 나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거나 사람들이 환호하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돈이 엄청 많아진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충분하다'는 것을 명확히 안다.


실패해도 괜찮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든 무엇이든 도전해도 괜찮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모든 선택은 내 몫이며, 모든 일을 성공과 실패로 나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는 지금 이 상태 그대로 충분하다.

작가의 이전글 넘치는 생각과 함께 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