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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Aug 13. 2022

미괄식 인간

내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명쾌하게 표현하는 글을 쓰고 싶다.


매사에 두괄식이기보다 미괄식인 인간이었다. 이를테면 ㅇㅇㅇ가 되고 싶다, ㅇㅇㅇ가 되어야겠다, 같은 목표를 첫 문장으로 두고 그에 맞춰 정진하기보다는, 그때그때의 흥미와 처한 상황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우연들을 따라서 시간의 보폭대로 걷다가 'ㅇㅇㅇ가 되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맞닥뜨리곤 하는 식이었다. 미괄식의 나쁜 점은 뚜렷한 목표가 없어서인지 종종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남에게만 그렇게 보이면 모르겠는데, 내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무척 피곤해진다.
<다정소감> p.9


나도 그렇다. 'ㅇㅇㅇ가 되어야겠다'라는 목표를 뚜렷하게 세워본 적이 별로 없다. 작은 목표는 자주 세운다. 책을 읽겠다, 매일 글을 쓰겠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 등등. 이런 것도 목표이긴 하지만, 나의 이런 목표에는 도착지가 없다. '책을 많이 읽어서 무얼 하겠다, 글을 써서 ㅇㅇㅇ가 되겠다, 영어를 잘해서 ㅇㅇㅇ를 해보겠다'라는 목적지가 없다. 책을 읽는 것이 좋고, 글을 쓰면 하루를 잘 사는 느낌이 좋다. 영어를 잘할 내 모습을 상상하면 멋지다.

​그래서 <다정소감> 작가의 말처럼 '그때그때의 흥미와 처한 상황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우연들을 따라서 시간의 보폭대로 걷다가 'ㅇㅇㅇ가 되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맞닥뜨리고 싶다.

​새해에 장기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중기 목표와 단기 목표를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장기 목표를 세워도 와닿지가 않는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장기 목표보다는 하루하루 정해둔 일을 규칙대로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재밌어서 하는 활동들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것을 가져다줄지 기대는 되지만, 막상 무엇을 위해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지를 말해보라고 하면, 모르겠다.

​모든 이들이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점을 미괄식과 두괄식으로 명쾌하게 표현한 작가의 문장에 감탄했다. 게다가 그런 성향이 결국 스스로를 한심하게 보기도 한다는 결론에 위로를 받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라고 해야 할까.  

​가정에서도 'ㅇㅇㅇ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라는 목표를 정해두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면 좋겠는데 목표를 정할 때마다 바뀐다. 그럼에도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또다시 목표를 정한다.

​<다정소감> 작가님도 그렇다는데, 이쯤에서 그만 나도 미괄식인 인간임을 인정해야겠다. 뚜렷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두괄식 인간도 있고, 목표 없이 우연들을 따라 걷다가 상상보다 더 멋진 목적지에 닿는 미괄식 인간도 있으니까.

* 미괄식 :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세한 내용을 먼저 쓰고 주제를 맨 뒤에 놓는 방식
* 두괄식 : 주제를 글의 첫머리에 놓고 이를 뒷받침하다는 자세한 내용을 뒤에 두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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