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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 Jun 20. 2020

귀 기울이기

'9번의 일'을 읽고

내 소중한 남편도 그럴 것이다. 종일 기계와 씨름하고, 지난주에 들어온 신입을 가르치면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회사에 기계가 세 대인데 한 대를 담당하는 직원이 몇 달 전에 그만두었다. 코로나로 인해 일이 줄어든 참에 직원이 그만뒀으니 새로운 직원을 뽑을 리가 없었다. 비어 있는 기계에서 감당했던 일들이 그와 또 다른 직원들에게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 초기에는 회사 일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요즘엔 다시 일이 많아진다고 한다. 많은 회사들이 일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지만, 여전히 세 대의 기계 중 두 대만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남은 직원들은 야근이 잦아졌다. 그나마 그와 함께 일하던 손 빠른 직원도 지난달에 딱 일 년을 채우고 그만두었다.  


남편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게다가 나에게 한없이 다정하다. 첫 번째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학원에 퇴사하겠다고 말하고 한 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자고 있는 나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준비를 하고 나가서 종일 일하고, 밤 10시에 끝나는 나를 데리러 학원으로 왔다. 업무가 늦어져서 30분 ~ 1시간을 기다리는 날도 있었다. 집 방향이 비슷한 동료 선생님을 태워서 데려다주고 우리 집으로 가면 12시가 다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냈다. 그러면서도 좀처럼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유산을 한 뒤에는 나를 꼼짝 못 하게 하고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건 적극적으로 시험관을 하기 위해서다. 유산을 했지만 임신을 유지했던 약 한 달 동안 일과 시험관을 병행하기는 힘들겠다고 판단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학원 일도 만만치 않아서 체력이 관건인데 그 당시 나는 오랜 학원 생활로 인해 많이 지쳐 있었다. 주변 강사들 중에는 출산하기 며칠 전까지 일하고, 출산 후 100일이 되기도 전에 출근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상의 끝에 시험관을 하는 동안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가계부를 정리하고 한 달 지출을 정했다.


점차 집에서 보내는 일상에 적응해 간다. ‘과연 마음 편히 쉴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글쓰기도 시작했다. 미뤄왔던 영어 공부를 시작했으며 코로나로 발이 묶인 조카들도 돌본다. 남편은 두 배의 부담을 안고 회사에서 바쁘고 힘든 하루를 보낼 것이다. 가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그 날 힘들었던 사건을 수다스럽게 쏟아놓는다. 그저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또 똑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내가 일하면서 힘들어할 때마다 남편은, 아무리 늦은 시간이더라도 격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내편을 들어주었다. 나도 그렇게 하면 되는데.. 자꾸 잊어버린다. 어떤 직종이든 회사를 다니면서 하루하루 일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저 들어주고 같은 편이 되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는 것을.


우리 가족의 또 다른 미래를 꿈꾸며 지금 이렇게 평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남편의 고단함 덕분이다.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많을 텐데도 우리를 위해 묵묵히 참고 견디며 일에서의 보람을 찾고 성실하게 일하는 내편 덕분이다. 그에 비하면 그의 힘듦을 헤아리고 같은 편에서 서서 공감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가끔 남편은 일하다가 생긴 작은 상처를 보여주며 어린아이처럼 엄살을 부린다. 그 상처들이 한 번에 다가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잊지 말아야지. 오늘도 남편은 우리의 평온한 삶을 위해 ‘9번’이 되어 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나의 맞장구만으로도 마음을 풀고 또 씩씩하게 하루를 보낼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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